십제국(十濟國)은 초기 말갈족의 국가였다. 십제국 침입은 고구려 동북쪽의 말갈과 같은 종족으로써 옥저에서 쫒겨나 지금의 강릉,춘천 등지에 살고 있었다. 온조 집단이 정착한 곳은 하북위례성(오늘날 서울종로구 일대)이었고 국호는 처음에 십제국이라 하였다. 중신 중 재종숙부 을음을 비롯한 다섯 명과 백성 절반을 이끌고 독립하여 십제국을 세운다. 이에 마한왕은 동북방의 100리 땅을 온조에게 내주었는데, 그 곳은 색리국으로서 마한 54국 중 가장 북단에 위치한 나라였다. 온조(溫祚)는 한수(漢水) 이남 지방을 다스리고 있던 홍성(洪城) 금마(金馬) 마한(馬韓)으로부터 마한(馬韓)의 동북 땅 1백 리를 할양 받아 금마산(金馬山:홍성 금마)에서 마한(馬韓)의 후국(侯國)인 십제국을 건국하였다. 온조의 형 비류는 고구려의 전통을 이어받아 태왕위에 등극하였다 하나, 십제국의 대소신료들은 백제국이 십제국 위에서 군림하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다. 소서노의 두 아들은 한강주변에 백제국을 세우나 온조가 만년 신하로 있어야 한다는데 불만을 품고 독립하여 십제국을 세운다. 이에 격분한 비류는 군사를 이끌고 십제를 공격하며 이소식을 들은 소서노는 형제간의 골육상쟁을 막았다
십제국(十濟國)은 초기 말갈족의 국가였다. 십제국 침입은 고구려 동북쪽의 말갈과 같은 종족으로써 옥저에서 쫒겨나 지금의 강릉,춘천 등지에 살고 있었다. 온조 집단이 정착한 곳은 하북위례성(오늘날 서울종로구 일대)이었고 국호는 처음에 십제국이라 하였다. 중신 중 재종숙부 을음을 비롯한 다섯 명과 백성 절반을 이끌고 독립하여 십제국을 세운다. 이에 마한왕은 동북방의 100리 땅을 온조에게 내주었는데, 그 곳은 색리국으로서 마한 54국 중 가장 북단에 위치한 나라였다. 온조(溫祚)는 한수(漢水) 이남 지방을 다스리고 있던 홍성(洪城) 금마(金馬) 마한(馬韓)으로부터 마한(馬韓)의 동북 땅 1백 리를 할양 받아 금마산(金馬山:홍성 금마)에서 마한(馬韓)의 후국(侯國)인 십제국을 건국하였다. 온조의 형 비류는 고구려의 전통을 이어받아 태왕위에 등극하였다 하나, 십제국의 대소신료들은 백제국이 십제국 위에서 군림하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다. 소서노의 두 아들은 한강주변에 백제국을 세우나 온조가 만년 신하로 있어야 한다는데 불만을 품고 독립하여 십제국을 세운다. 이에 격분한 비류는 군사를 이끌고 십제를 공격하며 이소식을 들은 소서노는 형제간의 골육상쟁을 막았다 하남 위례성에 도읍한 온조의 백제(십제국)는 날로 번성하고 백성들이 잘 살아서 그리고 온조왕은 매우 어질어 십제국은 나날이 왕성해 갔고, 비류가 세워서 다스리던 비류백제(미추홀국)는 뒤에 하남 위례성의 온조 백제와 합하게 되어 후에 나라 이름을 백제(百濟)라 고쳤습니다. 온 백성이 물을 건너왔다는 데에서 백제라고 불렀다. 분류:마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