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성대군(錦城大君, 1426년 음력 3월 28일~1457년 음력 10월 21일)은 조선 전기의 왕족으로, 세종과 소헌왕후 심씨의 여섯째 아들이다. 이름은 유(瑜), 시호는 정민(貞愍)이다. 단종의 숙부, 세조의 수양대군보다 9세 아래의 동생이였다. 세종이 승하한 이후 유약한 문종이 왕위를 계승하였으나 문종마저도 일찍 세상을 하직한다. 다음 왕위를 계승할 사람은 문종의 아들이었던 단종이였다. 수양대군은 단종을 내쫒고 나서도 상왕으로 깍듯이 모셨고 사육신과 그의 동생인 금성대군이 일으킨 그 당시로서는 용서 못할 역모사건이 두 번이나 연거푸 일어나고 노회한 한명회 등을 비롯한 아첨배들의 강권에 못 이겨 마지못해 그의 숙부인 금성대군이 다시 단종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왕위복위 운동을 펼치다가 적발되기에 이른다. 단종복위운동에 연루되어 경북 순릉으로 유배되었다. 금성대군의 사건에서도 그와 관련되어 있는 순흥이 초토화되다시피 수많은 사람들이 죽음을 면치 못했다.
금성대군(錦城大君, 1426년 음력 3월 28일~1457년 음력 10월 21일)은 조선 전기의 왕족으로, 세종과 소헌왕후 심씨의 여섯째 아들이다. 이름은 유(瑜), 시호는 정민(貞愍)이다. 단종의 숙부, 세조의 수양대군보다 9세 아래의 동생이였다. 세종이 승하한 이후 유약한 문종이 왕위를 계승하였으나 문종마저도 일찍 세상을 하직한다. 다음 왕위를 계승할 사람은 문종의 아들이었던 단종이였다. 수양대군은 단종을 내쫒고 나서도 상왕으로 깍듯이 모셨고 사육신과 그의 동생인 금성대군이 일으킨 그 당시로서는 용서 못할 역모사건이 두 번이나 연거푸 일어나고 노회한 한명회 등을 비롯한 아첨배들의 강권에 못 이겨 마지못해 그의 숙부인 금성대군이 다시 단종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왕위복위 운동을 펼치다가 적발되기에 이른다. 단종복위운동에 연루되어 경북 순릉으로 유배되었다. 정축지변(1457년) 금성대군이 단종복위 사건에 연루되어 순흥에 유배 와 있다가 순흥부사 이보흠과 함께 다시 거사를 도모하다 실패한 사건은 순흥을 뒤흔들었다. 단종 복위운동이 실패한 후 단종은 영월에서, 금성대군은 안동에서 죽임을 당했다. 재차 순흥에서 순흥부사 이보흠과 단종복위운동을 꾀하다 기천 현감의 밀고로 사약을 받아 죽었다. 금성대군의 사건에서도 그와 관련되어 있는 순흥이 초토화되다시피 수많은 사람들이 죽음을 면치 못했다. 금성대군신단(錦城大君神壇) 사적 제491호 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 내죽리 70번지 조선 세조(世祖)2년(1456)에 성삼문(成三問) 등 사육신(死六臣)의 단종복위운동에 연루되어 세종의 여섯째아들 금성대군이 순흥에 위리안치되었다. 분류:조선의 왕족 분류:금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