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키우스 [Gaius Messius Quintus Trajanus Decius,201경 하(下)판노니아 부달리아~ 251]는 로마의 황제(249~251 재위)이다. 데키우스의 기독교 박해는 기독교인이 "무신론자들"이라는 오해가 배경이 되어 일어났다. 로마는 다신교 국가였다. 모이시아를 침략한 고트족과 전투를 벌였으며 최초로 로마 제국 전역의 그리스도교도를 박해했다. 황제가 되기 전에 원로원 의원과 콘술(집정관)을 지냈는데, 혈통은 전혀 알려져 있지 않다. 245년경 아랍인 황제 필리푸스 황제에게 도나우 강 지배권을 받았고, 249년에 로마 황제로 선포되었지만 그는 황제가 되기를 바라지 않았다고 한다. 248년에 로마는 건국 천년을 맞이하여 천년제를 거행했고, 251년에는 로마 황제 데키우스가 고트족과 전쟁을 치르다 패하여 사망하기도 했다. 필리푸스(Philip)는 천년제를 치른 이듬해 그의 장군인 데키우스(Decius)에게 패하여 황제 자리를 내준다. 데키우스는 베로나 근처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필리푸스를 죽인 뒤 고트족이 도나우 강을 건너 모이시아와 트라키아를 침략하자 그들을 물리치기 위해 출전했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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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키우스 [Gaius Messius Quintus Trajanus Decius,201경 하(下)판노니아 부달리아~ 251]는 로마의 황제(249~251 재위)이다. 데키우스의 기독교 박해는 기독교인이 "무신론자들"이라는 오해가 배경이 되어 일어났다. 로마는 다신교 국가였다. 모이시아를 침략한 고트족과 전투를 벌였으며 최초로 로마 제국 전역의 그리스도교도를 박해했다. 황제가 되기 전에 원로원 의원과 콘술(집정관)을 지냈는데, 혈통은 전혀 알려져 있지 않다. 245년경 아랍인 황제 필리푸스 황제에게 도나우 강 지배권을 받았고, 249년에 로마 황제로 선포되었지만 그는 황제가 되기를 바라지 않았다고 한다. 248년에 로마는 건국 천년을 맞이하여 천년제를 거행했고, 251년에는 로마 황제 데키우스가 고트족과 전쟁을 치르다 패하여 사망하기도 했다. 필리푸스(Philip)는 천년제를 치른 이듬해 그의 장군인 데키우스(Decius)에게 패하여 황제 자리를 내준다. 데키우스는 베로나 근처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필리푸스를 죽인 뒤 고트족이 도나우 강을 건너 모이시아와 트라키아를 침략하자 그들을 물리치기 위해 출전했다. 251년 6월 흑해연안 도브루자에 있는 늪지대에서 벌어진 마지막 전투에서 결국 로마는 패배했고 데키우스와 그의 아들은 전사했다. 데키우스는 로마를 떠나 있는 동안 발레리아누스를 후계자로 선택해 통치권을 맡겼으나 갈루스(251~253)가 데키우스의 뒤를 이어 황제가 되었다. 데키우스가 왕위에 오르기 전에는 그리스도교도들에 대한 박해가 로마 제국의 일부 지역에서만 가끔 일어났으나 250년 1월초에 그는 모든 시민에게 로마의 신을 경배하고 행정관이 보는 앞에서 신성한 제물을 바치라는 포고령을 선포했다. 많은 그리스도교도들은 명령을 거부했고 그때문에 로마와 예루살렘 및 안티오크의 주교들이 목숨을 잃었으며 많은 사람들이 체포되었다. 그러나 정부의 폭력을 비난하고 순교자들의 수동적인 저항을 성원하는 여론이 높아 그리스도교의 세력은 더욱 강해졌다. 박해는 데키우스가 죽기 몇 개월 전인 251년초에 끝났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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