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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팔수 부인(八須 夫人,생몰년 미상)은 구이신왕의 어머니였다. 백제 제18대 왕 전지왕의 비이다. 팔수(八須)는 닌토쿠 천황(仁德)의 딸이다. 서구(胥狗)의 첩(妾) 동모(同母)로서, 섬안에서 아들을 낳으니. 곧, 구이신(久爾辛)이다. 팔수는 왜왕 응신천황의 딸로, 전지왕이 왜에 인질로 잡혀 있을 때 혼인했고 전지왕이 환국할 때 아들 구이신왕을 임신한 상태로 백제로 입국했습니다. 인덕 천황의 딸인 팔수는 전지왕을 따라서, 백제로 들어 오다가, 도읍에서 일어난 막래의 반란사건으로 인해, 도읍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잠시 섬에서 대기하게 됩니다. 이 때 섬에서 대기하는 짧은 순간에 아들 구이신(久爾辛)을 낳습니다. 그러니, 구이신(久爾辛)은 무령왕(武寧王)과 똑같이 섬에서 태어난 왕이라는 것이죠. 전지왕이 왜에 볼모로 있다가 아신왕이 죽자 귀국하려는데 아신왕의 동생 훈해가 섭정을 하면서 기다리다 막내 동생 설례가 형을 죽이고 왕에 올랐다. 그 사실을 귀국하고 한성인 해충(解忠)에게 듣고 해도에 머물렀다가 백성들이 설례를 죽이자 전지를 왕으로 추대하였다. 전지왕이 왕이 되고 기존 왕비가문 진씨는 약화되고 해씨가문은 성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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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 - 팔수 부인(八須 夫人,생몰년 미상)은 구이신왕의 어머니였다. 백제 제18대 왕 전지왕의 비이다. 팔수(八須)는 닌토쿠 천황(仁德)의 딸이다. 서구(胥狗)의 첩(妾) 동모(同母)로서, 섬안에서 아들을 낳으니. 곧, 구이신(久爾辛)이다. 팔수는 왜왕 응신천황의 딸로, 전지왕이 왜에 인질로 잡혀 있을 때 혼인했고 전지왕이 환국할 때 아들 구이신왕을 임신한 상태로 백제로 입국했습니다. 인덕 천황의 딸인 팔수는 전지왕을 따라서, 백제로 들어 오다가, 도읍에서 일어난 막래의 반란사건으로 인해, 도읍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잠시 섬에서 대기하게 됩니다. 이 때 섬에서 대기하는 짧은 순간에 아들 구이신(久爾辛)을 낳습니다. 그러니, 구이신(久爾辛)은 무령왕(武寧王)과 똑같이 섬에서 태어난 왕이라는 것이죠. 전지왕이 왜에 볼모로 있다가 아신왕이 죽자 귀국하려는데 아신왕의 동생 훈해가 섭정을 하면서 기다리다 막내 동생 설례가 형을 죽이고 왕에 올랐다. 그 사실을 귀국하고 한성인 해충(解忠)에게 듣고 해도에 머물렀다가 백성들이 설례를 죽이자 전지를 왕으로 추대하였다. 전지왕이 왕이 되고 기존 왕비가문 진씨는 약화되고 해씨가문은 성장하였다. 전지왕의 즉위에 공이 큰 해씨 집안 출신이며, 제19대 왕인 구이신왕을 낳음으로써 해씨 세력이 정권의 핵심으로 부상하는 계기가 되었다. 전지왕의 옹립에 공이 많았고, 그 결과 진씨(眞氏)에 대신하여 새로 왕비족으로 등장한 해씨(解氏) 출신으로 추측된다. 구이신왕은 전지왕의 맏아들로 어머니는 팔수 부인이다. 419년에 전지대왕(腆支大王)이 물러나고 구이신왕久爾辛王이 즉위하였는데, [일본서기]에 의하면 백제 장수인 목만치(木滿致:木劦滿致)가 백제의 국정을 어지럽혔다. 목만치는 382년 왜국에 있던 침류대왕의 신하로서 신라를 쳤던 목라근자(木羅斤子)의 아들이다. 목만치는 전지대왕의 왕비인 팔수(八須) 부인과 통정(通情)까지 하였다. 이에 423년경에 왜찬왕, 반정천황이 목만치를 왜국으로 불러들여 백제의 혁명적 사태를 수습하였다. 구이신왕은 도주하였는데 웅략 11년(469년)에 백제에서 도망쳐온 귀신(貴信)으로 나온다. 분류:백제의 왕비 분류:다지 분류:전지 분류:팔스 분류:판수 분류:팔공 산성 분류:팔각수 분류:팔전 분류: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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