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라 씨 또는 헤이시는 헤이안 시대(平安時代)의 호족이였다. 12세기 막강한 권력을 쥐고 영향력을 행사했던 일본의 무사가문이였다. 다이라 씨의 역사는 제50대 간무 천황(桓武天皇)의 손자 다카무네 친왕(高棟親王)이 825년에 '다이라'라는 성을 받은 데서 비롯된다. 여러 다이라(平)의 씨족 중에서 가장 유력한 것은 간무 헤이지(桓武平氏)로 동국(東国)으로 진출한 토착 세력이 되어 다이라노 마사카도(平将門)의 난을 거치며 자손은 치바(千葉), 가즈사(上総), 미우라(三浦), 호조(北條) 등의 여러 씨가 되어 가마쿠라 막부의 중핵을 이루었다. 요리토모는 생포되어 이즈 구니[伊豆國:도쿄 서남쪽에 있는 반도]로 유배당해 20년 동안 다이라 씨 [平氏]의 감시를 받으며 살았다. 요리토모는 여기서 간수(看守)인 이토 스케치카[伊藤祐親] 딸을 유혹하였다. 동국 지방에서 다이라씨 타도를 외치고 미나모토 요리토모(源賴朝)가 일어나 다이라씨 세력을 전멸시키는데 성공하였다. 요시쓰네는 요시나카를 무찌르고 교토를 점령한 뒤 세토나이카이[瀨戶內海]를 따라 남아 있던 다이라 씨[平氏]의 군대를 공격하기 시작해 1185년 봄 유명한 단노우라[壇の浦] 해전에서 이들을 전멸시켰다.
다이라 씨 또는 헤이시는 헤이안 시대(平安時代)의 호족이였다. 12세기 막강한 권력을 쥐고 영향력을 행사했던 일본의 무사가문이였다. 다이라 씨의 역사는 제50대 간무 천황(桓武天皇)의 손자 다카무네 친왕(高棟親王)이 825년에 '다이라'라는 성을 받은 데서 비롯된다. 여러 다이라(平)의 씨족 중에서 가장 유력한 것은 간무 헤이지(桓武平氏)로 동국(東国)으로 진출한 토착 세력이 되어 다이라노 마사카도(平将門)의 난을 거치며 자손은 치바(千葉), 가즈사(上総), 미우라(三浦), 호조(北條) 등의 여러 씨가 되어 가마쿠라 막부의 중핵을 이루었다. 요리토모는 생포되어 이즈 구니[伊豆國:도쿄 서남쪽에 있는 반도]로 유배당해 20년 동안 다이라 씨 [平氏]의 감시를 받으며 살았다. 요리토모는 여기서 간수(看守)인 이토 스케치카[伊藤祐親] 딸을 유혹하였다. 이들은 유력한 호족을 중심으로 무사단을 만들었는데 미나모토 씨와 다이라 씨의 무사단이 대표적이다. 12세기 중엽 시라카와 상황과 천황간의 대립으로 발생한 후지와라 씨 일가의 분쟁을 시작으로 계속된 암투 속에서 절대적 세력으로 성장한 무사 계층들 간의 긴장은 결국 왕실과 귀족들이 미나모토 씨와 다이라 씨를 앞세워 호겐의 난과 헤이지의 난을 통하여 내란을 치르는 극단적인 상황까지 초래하였다. 동국 지방에서 다이라씨 타도를 외치고 미나모토 요리토모(源賴朝)가 일어나 다이라씨 세력을 전멸시키는데 성공하였다. 요시쓰네는 요시나카를 무찌르고 교토를 점령한 뒤 세토나이카이[瀨戶內海]를 따라 남아 있던 다이라 씨[平氏]의 군대를 공격하기 시작해 1185년 봄 유명한 단노우라[壇の浦] 해전에서 이들을 전멸시켰다. 결국 막부의 실권은 호조씨에게 넘어간다. 미나모토 요리토모를 도와 다이라 씨를 토멸한 관동 지방의 무사들은 요리토모에게는 충성을 했지만, 그 아들들에게는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다. 1.
* 다카무네 친왕(高棟親王) : 간무 천황(桓武天皇)의 손자 2.
* 다이라노 마사카도(平将門) 3.
* 다이라노 도모모리 가 서력 1181년 세이도쇼군(征東将軍)에 취임 4.
* 다이라 타다모리(平忠盛) 5.
* 다이라 기요모리 (平忠盛) 6.
* 다이라 무네모리 (平宗盛) 고셋케(五攝家)는 가마쿠라 시대에 성립된 후지와라 씨의 혈통을 이은 다섯 가문이다. 관백이나 섭관은 셋케 출신만이 될 수 있었다. 셋칸케(摂関家), 싯베이케(執柄家)라고도 한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고노에 가문의 조카가 되는 조건으로 관백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