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tract
| - 현도(玄菟) 또는 현토는 전한(前漢)의 무제(武帝)가 기원전 107년에 세운 한사군(漢四郡) 중 하나이다. 낙랑, 임둔, 진번은 기원전 108년 6월에 설치 되고 현도군은 기원전 107년 3월에 설치되었다. 현도군은 앞서 한무제가 창해군(滄海郡)을 설치한 예맥(濊貊)의 땅에 둔 것이다. 한서 지리지에 따르면 낙랑군 40만6000여명, 현도군 23만1000여명이란 기록이다. 한사군의 존재 여부가 논란이지만 학자들이 추산하는 당시 인구는 100만명 정도다. 후한서 동옥저편에는 또 무제가 조선을 멸하고 옥저를 현도군으로 삼았다. 후에 이맥의 침략을 받게 되자 현도군을 고구려의 서북으로 옮겼다. 기원전 108년, 고조선의 멸망하고 기원전 1세기 부여가 건국되었다. 기원전 75년 현도군 사라지고 기원전 37년 고구려가 건국된다. 한사군(漢四郡)이 설치된 이후 현도군(玄菟郡)의 지배권 안에 있었으나 태조왕(太祖王:재위 53∼146)은 현도군을 쳐서 푸순[撫順] 방면으로 축출하였고, 요동군(遼東郡)과 낙랑군(樂浪郡)을 공격하였다. 재위 3년에 현도군을 공격하여 8천명생포하였고, 재위 12년 요동 서안평을 정벌하였으며, 재위 14년 후한 낙랑군 멸망시켰다. 재위 15년 후한 대방군 멸망시켰다. 서기 105년 고구려는 후한의 요동을 점령하고 서기 118년 현도군을 심양 서쪽으로 보낸다. 미천왕이 왕위에 오르자 영토를 넓히기에 힘써 302년에 현도군을 쳤고, 311년에는 요동의 서안평을 점령하였다. 이어 313년에는 낙랑군을, 이듬해에는 대방군을 점령하여 한나라의 세력을 완전히 몰아내고 대동강 유역까지 진출하였다. 삼국사기는 미천왕이 재위 3년(302) 현도군 사람 8천여명을 사로잡아 평양으로 옮겼다고 전하고 있고, 재위 14년(313)에는 낙랑군 남녀 2천여명을 사로잡아 평양으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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