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중(關中)은 파촉으로 가는 길목으로 한중으로 통해 있으며 그 사이가 한나라 초기에는 잔도로 되어 있었다. 진말 한초, 함양(咸陽)과 성도(城都)를 직선으로 연결한 선상에 한중(漢中)이 위치하게 되는데 한중(漢中)은 고조 류방이 항우에게 받은 봉지다. 유방은 할수 없이 한중으로 퇴각했다. 여기서 유방은 책사 장량의 계책을 받아들여 한중에서 관중으로 이동하는 길목인 진창 지역의 나무다리인 잔도(棧道)를 불태워버렸다. 공격할 의사가 없음을 보여 항우를 안심시키기 위해서였다. 한신은 적을 방심하도록 하기 위해 병사 1만으로 하여금 한중에서 관중지역으로 이르는 잔도를 대대적으로 수리하도록 했다. 이에 장한은 잔도가 이르는 길에 군사를 배치하고 방비하였다. 사실 한중을 나와 관중지역으로 진출했을 무렵만 하더라도 유방이 항우를 이길 가능성은 전혀 없어 보였다. 그 후 관중은 류방의 손에 들어오게 되고 류방은 수도를 함양(咸陽)에서 장안(서안)으로 옮겼다.
관중(關中)은 파촉으로 가는 길목으로 한중으로 통해 있으며 그 사이가 한나라 초기에는 잔도로 되어 있었다. 진말 한초, 함양(咸陽)과 성도(城都)를 직선으로 연결한 선상에 한중(漢中)이 위치하게 되는데 한중(漢中)은 고조 류방이 항우에게 받은 봉지다. 유방은 할수 없이 한중으로 퇴각했다. 여기서 유방은 책사 장량의 계책을 받아들여 한중에서 관중으로 이동하는 길목인 진창 지역의 나무다리인 잔도(棧道)를 불태워버렸다. 공격할 의사가 없음을 보여 항우를 안심시키기 위해서였다. 한신은 적을 방심하도록 하기 위해 병사 1만으로 하여금 한중에서 관중지역으로 이르는 잔도를 대대적으로 수리하도록 했다. 이에 장한은 잔도가 이르는 길에 군사를 배치하고 방비하였다. 사실 한중을 나와 관중지역으로 진출했을 무렵만 하더라도 유방이 항우를 이길 가능성은 전혀 없어 보였다. 그 후 관중은 류방의 손에 들어오게 되고 류방은 수도를 함양(咸陽)에서 장안(서안)으로 옮겼다. 후한말 황충은 건안 24년(219)에 유비가 한중왕에 오르자 오호대장의 한 사람으로 봉해졌다. 사서를 조사해 보면, 나관중이 황충의 죽음을 전면적으로 허구화시켰음을 알 수 있다. 조조는 천하를 순순히 유비에게 양보하지 않았다. 병법에 밝았던 그는 방어선을 한중과 관중 사이 천혜의 요충지에 구축했다. 제갈공명에게는 한중에서 관중 평야로 나가는 네 갈래 길이 있었다. 동에서부터 자오도, 당락도, 포사도, 진창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