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양왕(松讓王)은 고구려의 주변 비류국(沸流國)의 왕이였다. 고추모가 비류강에 떠내려오는 채소 껍질을 보고서 상류지역에 비류국이 있다는 사실 감지한다. 고추모가 비류국왕 송양을 방문한다. 기원전 36년에는 비류국(沸流國)의 왕 송양왕(松讓王)의 항복을 받아내어 고구려의 한 행정구역인 다물도(多勿都)로 편입시키고 송양을 도주로 삼았다. 비류국의 합병은 바로 고구려연맹체에서 주도권이 주몽의 계루 집단으로 넘어가는 과정이라고 파악한다. 나중에 송양왕은 ‘송양후’ 또는 ‘송양왕’으로 명칭을 유지한다. 고구려에 투항한 비류국왕이 송양왕(松讓王)이며, 송양왕의 딸을 송씨(松氏)라 하였다. 고구려는 일찍이 기마민족(騎馬民族)의 문화를 받아들이고 주변 비류국(沸流國) 송양왕(松讓王)의 항복을 받아내고 해인국(荇人國)을 정복하고 북옥저(北沃沮)를 멸망시키는 등 여러 부족 국가를 정벌하였다. 비류수(沸流水) 건너편에 자리한 비류국의 송양왕(松讓王)을 비롯하여 우태왕(優台王)등을 여지없이 무찔러버렸다. 분류:고구려
송양왕(松讓王)은 고구려의 주변 비류국(沸流國)의 왕이였다. 고추모가 비류강에 떠내려오는 채소 껍질을 보고서 상류지역에 비류국이 있다는 사실 감지한다. 고추모가 비류국왕 송양을 방문한다. 기원전 36년에는 비류국(沸流國)의 왕 송양왕(松讓王)의 항복을 받아내어 고구려의 한 행정구역인 다물도(多勿都)로 편입시키고 송양을 도주로 삼았다. 비류국의 합병은 바로 고구려연맹체에서 주도권이 주몽의 계루 집단으로 넘어가는 과정이라고 파악한다. 나중에 송양왕은 ‘송양후’ 또는 ‘송양왕’으로 명칭을 유지한다. 고구려에 투항한 비류국왕이 송양왕(松讓王)이며, 송양왕의 딸을 송씨(松氏)라 하였다. 고구려는 일찍이 기마민족(騎馬民族)의 문화를 받아들이고 주변 비류국(沸流國) 송양왕(松讓王)의 항복을 받아내고 해인국(荇人國)을 정복하고 북옥저(北沃沮)를 멸망시키는 등 여러 부족 국가를 정벌하였다. 비류수(沸流水) 건너편에 자리한 비류국의 송양왕(松讓王)을 비롯하여 우태왕(優台王)등을 여지없이 무찔러버렸다. 분류:고구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