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태 (1970년 3월 1일 - )는 한국 프로 야구 현대 유니콘스의 투수이다. 우투우타이다. 한양대학교 시절 국가 대표 에이스로 활약했다. 프로 데뷔 첫 해인 1992년에 시즌 도중 부상을 당해 그 다음해 까지 제대로 뛰지 못했다. 그러나 1994년 8승을 시작으로 96년 15승을 올리며 재활에 성공했고, 1998년에는 정규리그 MVP에 올랐으며, 1999년에는 20승 투수가 되었다. 당시 주무기는 150km부근의 직구와 슬로커브였다. 2001년과 2002년에는 일본 프로 야구의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뛰었지만 활동이 없었다. 2002년 시즌을 끝으로 현대 유니콘스로 복귀했으며, 복귀 후 첫 시즌이었던 2003년 다승왕과 승률왕을 동시에 차지하는 등 성공적인 시즌을 보냈지만 이후 부상으로 내리막길을 걸었고 2004년에 7억 5천만원이었던 연봉도 계속 삭감되었다. 2007년 부상에서 회복하여 1군에 복귀했지만 오랜 공백으로 인한 자신감 부족과 고령으로 인한 직구 구위 저하때문에 난조를 보이며 3연패를 기록한 후 자진해서 2군으로 내려간 뒤 복귀 기회를 노리고 있다.
정민태 (1970년 3월 1일 - )는 한국 프로 야구 현대 유니콘스의 투수이다. 우투우타이다. 한양대학교 시절 국가 대표 에이스로 활약했다. 프로 데뷔 첫 해인 1992년에 시즌 도중 부상을 당해 그 다음해 까지 제대로 뛰지 못했다. 그러나 1994년 8승을 시작으로 96년 15승을 올리며 재활에 성공했고, 1998년에는 정규리그 MVP에 올랐으며, 1999년에는 20승 투수가 되었다. 당시 주무기는 150km부근의 직구와 슬로커브였다. 2001년과 2002년에는 일본 프로 야구의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뛰었지만 활동이 없었다. 2002년 시즌을 끝으로 현대 유니콘스로 복귀했으며, 복귀 후 첫 시즌이었던 2003년 다승왕과 승률왕을 동시에 차지하는 등 성공적인 시즌을 보냈지만 이후 부상으로 내리막길을 걸었고 2004년에 7억 5천만원이었던 연봉도 계속 삭감되었다. 2007년 부상에서 회복하여 1군에 복귀했지만 오랜 공백으로 인한 자신감 부족과 고령으로 인한 직구 구위 저하때문에 난조를 보이며 3연패를 기록한 후 자진해서 2군으로 내려간 뒤 복귀 기회를 노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