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 목공 영임호(秦穆公 嬴任好, ? ~ 기원전 621년)는 진나라의 제9대 군주이다. 그는 춘추시대의 오패 중의 하나로 주나라 양왕(襄王) 때 진나라의 영토를 크게 확장하였다. 덕공(德公 기원전 678-676)의 셋째 아들이다. 기원전 7세기의 진목공(秦穆公)이 기년궁(祈年宮)과 탁천궁(橐泉宮)을 건설했다. 기원전 659년에 왕위를 계승한 진목공(秦穆公)이 백리해(百里奚), 건숙(蹇叔), 맹명(孟明) 등을 중용하여 진나라를 부국 강병으로 이끌었다. 그는 동쪽으로는 진(晋)나라를 압박하고 서쪽으로는 서역의 이민족과 경계하였다. 진목공 9년 진헌공(晉獻公)이 죽자 여희(驪姬)의 아들인 해제(奚齊)가 옹립되었으나 신하인 이극 등에게 시해 당하자 국외에 망명 중이던 이오(夷吾 후의 진혜공)가 목공의 도움을 호소했다. 제환공과 진문공의 중간 시기에 패자에 도전했던 송양공과 진목공이다. 송양공은 송양지인으로 어리석은 인물의 대명사가 된 사람이고, 진목공은 염소가죽 다섯장을 주고 백리해를 등용하였다.
진 목공 영임호(秦穆公 嬴任好, ? ~ 기원전 621년)는 진나라의 제9대 군주이다. 그는 춘추시대의 오패 중의 하나로 주나라 양왕(襄王) 때 진나라의 영토를 크게 확장하였다. 덕공(德公 기원전 678-676)의 셋째 아들이다. 기원전 7세기의 진목공(秦穆公)이 기년궁(祈年宮)과 탁천궁(橐泉宮)을 건설했다. 기원전 659년에 왕위를 계승한 진목공(秦穆公)이 백리해(百里奚), 건숙(蹇叔), 맹명(孟明) 등을 중용하여 진나라를 부국 강병으로 이끌었다. 그는 동쪽으로는 진(晋)나라를 압박하고 서쪽으로는 서역의 이민족과 경계하였다. 진목공 9년 진헌공(晉獻公)이 죽자 여희(驪姬)의 아들인 해제(奚齊)가 옹립되었으나 신하인 이극 등에게 시해 당하자 국외에 망명 중이던 이오(夷吾 후의 진혜공)가 목공의 도움을 호소했다. 제환공과 진문공의 중간 시기에 패자에 도전했던 송양공과 진목공이다. 송양공은 송양지인으로 어리석은 인물의 대명사가 된 사람이고, 진목공은 염소가죽 다섯장을 주고 백리해를 등용하였다. 중국 춘추전국시대 백리해(百里奚)가 뜻을 펴지 못하며 떠돌다 진목공(秦穆公)을 만났다. 진목공이 나이를 묻자 백리해는 "겨우 일흔입니다"라고 답했다. 진목공은 백리해가 재주가 매우 출중하다는 것을 알게 되어 그를 상경(上卿)의 직에 제수하려고 하였다. 백리해는 의형(義兄) 건숙(蹇叔)을 진목공에게 천거하였다. 천마(天馬)를 주관하는 신선 백락이 본명을 대신하게 되었다. 백락은 춘추시대 군주인 진목공(秦穆公)을 위해 말을 골라주었는데, 그가 고른 말은 반드시 천리마였다고 한다. 분류:춘추오패 분류:진나라의 군주 분류:목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