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롱집단(關隴集團)은 5호 16국과 남북조 시대를 거치면서 혼란한 중국 사회에서 탄생한 독특한 집단이다. 북위 말기부터 서위, 북주를 거치는 동안 위수 지역을 중심으로 뭉친 집단에서 출발했다. 북위를 멸망시키고, 동위, 서위로 중국 북조가 분열되었을 때 서위의 우문태는 서방 중심지로 위수 지역의 관중 지방을 선택했다. 우문태는 자신의 지지기반으로 강력한 군부가 필요했는데 이때 관중 지방에서 뭉친 집단인 관롱집단을 이용했다. 보통 서위 8주국과 12대장군의 후예들이다. 수나라를 세운 양견도 이 관롱집단 출신이다. 이 관중 지방은 원래 선비족의 본거지로서 선비족과 연결되는 지역이다.
관롱집단(關隴集團)은 5호 16국과 남북조 시대를 거치면서 혼란한 중국 사회에서 탄생한 독특한 집단이다. 북위 말기부터 서위, 북주를 거치는 동안 위수 지역을 중심으로 뭉친 집단에서 출발했다. 북위를 멸망시키고, 동위, 서위로 중국 북조가 분열되었을 때 서위의 우문태는 서방 중심지로 위수 지역의 관중 지방을 선택했다. 우문태는 자신의 지지기반으로 강력한 군부가 필요했는데 이때 관중 지방에서 뭉친 집단인 관롱집단을 이용했다. 보통 서위 8주국과 12대장군의 후예들이다. 수나라를 세운 양견도 이 관롱집단 출신이다. 이 관중 지방은 원래 선비족의 본거지로서 선비족과 연결되는 지역이다. 북위가 처음 나라를 세우고 북조를 통일했을 때 이 관중 지방에 많은 선비족들이 이주했다. 북위가 효문제의 한화 정책으로 중국화되어 가고, 수도를 낙양으로 옮기자 이 관중 지방의 선비족들은 한인들과 어울려 남겨지게 된다. 이들은 낙양의 선비족 처럼 귀족화되지 못하고 단순히 서방을 지키는 관리나 향리 또는 장원 소유자가 되어 지방의 실세가 되었다. 서위 멸망 후 북주의 중심지가 위수 지역이 되자, 북주 총관 양견 등 관롱집단의 사람들이 대거 관료가 되어 기용되었다. 양견이 수를 세우자 관롱집단은 건국 공신으로 세를 떨치게 되었다. 이 관롱집단은 결국 귀족이나 호족이 아니고 화북의 북방민족도 아니고 순수한 중국인도 아니었다. 수 양제와 당 고조 이연은 이종사촌간이었는데, 결국 수와 당의 교체는 왕조의 교체보다 관롱집단간의 지배체제 변화로 보는 것이 현실적이다. 관롱 집단의 성격상, 수와 당이 과연 순수한 중국인의 제국인가에 대한 의문 또한 발생한다. 핏줄상의 중국왕조 보다는 건국 지역 및 건국 이념상의 중국 왕조가 타당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