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tract
| - 상당(上黨)은 전국시대 한나라 땅이였다. 조나라 효성왕 7년(기원전 262)에 조나라는 상당을 합병했던 일이 화근을 자아내어 진나라와 전쟁이 일어났다. 진나라 군은 한나라 땅인 야왕(野王)이란 곳을 점령하여 상당으로 가는 길을 끊어 버렸다. 한나라의 풍정은 한나라 수도 신정으로 가는 길이 막혀 상당을 조나라에 바치기로 했다. 상당 태수 풍정은 조나라에 사자를 보내 상당을 바치겠다는 뜻을 알렸다. 조나라는 상당 태수 풍정의 제안으로 공론이 분분했다. 아무 이유 없이 한 군을 그저 얻게 되는 것이니 받는 쪽이 좋습니다. 그리하여 조나라는 상당을 받아들이고, 풍정 (톤루)을 화양군(볼딸굴)에 봉했다. 조나라는 진나라를 치고 상당의 백성들을 보호해 주었다. 민중은 조나라로 피난하고, 조나라 군은 상당에서 도망간 피난민들을 장평에서 구제했다. 원래 상당은 진나라에 바치기로 한 땅이였다. 진나라 왕은 대군을 끌고 조나라를 치도록 하였다. 조나라는 상당에 대해 익숙하지 않아서 그곳의 지세를 잘 몰랐기 때문에, 제대로 방어진을 치지 못하였다. 4월, 진나라 군은 조나라의 개입을 구실로 하여 조나라와 전쟁의 서막을 열었다. 조나라를 공략하기 위해 진나라가 다시 군사를 일으켜 공격하지만, 조나라의 염파 장군이 누벽을 쌓고 대적한다. 조나라의 염파는 진나라의 거센 공세를 당하였다. 통일의 전주곡, ‘장평(長平)의 싸움’ 당시 일부 군사개혁을 거친 조나라는 군사 동원력은 상당했으나 외교에서 갈팡질팡하면서 국제적 신용을 잃고 고립을 자초했다. 왕응린의 지리통석에는 우나라는 하양(下陽), 조나라는 상당(上當), 위나라는 안읍(安邑), 연나라는 유관, 오나라는 서릉(西陵)이라 했다. 촉나라는 한락(漢樂)이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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