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리아누스 [Publius Licinius Valerianus,?~ 260]는 로마의 황제(253~260 재위)이다. 세베루스 알레산드로(222~235 재위) 때 콘술(집정관)을 지냈으며 막시미누스 황제에 대항한 고르디아누스 1세의 반란(238)을 원로원이 지지하도록 만드는 데 주도적 역할을 했다. 막시미누스 황제에 대항해 이탈리아를 지켜낸 20인 집정정부에 참여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후 데키우스(249~251 재위)가 집권할 때까지는 다시 역사에서 거론되지 않았다. 갈루스(251~253 재위) 치세 때는 라인 강 상류지방 주둔군을 지휘했으며 갈루스의 명령으로 대립 황제인 아이밀리아누스를 타도하기 위해 북부의 군대를 이끌고 돌아왔다. 새 황제 아에밀리아누스 역시 전 황제의 부름을 받고 뒤늦게 달려온 발레리아누스(Valerianus)에게 복수를 당하게 된다. 모두 253년의 일이다. 1.
* 넘겨주기
발레리아누스 [Publius Licinius Valerianus,?~ 260]는 로마의 황제(253~260 재위)이다. 세베루스 알레산드로(222~235 재위) 때 콘술(집정관)을 지냈으며 막시미누스 황제에 대항한 고르디아누스 1세의 반란(238)을 원로원이 지지하도록 만드는 데 주도적 역할을 했다. 막시미누스 황제에 대항해 이탈리아를 지켜낸 20인 집정정부에 참여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후 데키우스(249~251 재위)가 집권할 때까지는 다시 역사에서 거론되지 않았다. 갈루스(251~253 재위) 치세 때는 라인 강 상류지방 주둔군을 지휘했으며 갈루스의 명령으로 대립 황제인 아이밀리아누스를 타도하기 위해 북부의 군대를 이끌고 돌아왔다. 새 황제 아에밀리아누스 역시 전 황제의 부름을 받고 뒤늦게 달려온 발레리아누스(Valerianus)에게 복수를 당하게 된다. 모두 253년의 일이다. 그는 너무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갈루스를 구하지 못했으나 그대신 전투에서 이기고 제위에 올랐다. 황제가 된 뒤 그는 데키우스의 그리스도교 박해정책을 더욱 강화했으며, 특히 카르타고 주교 키프리아누스와 로마 주교 식스투스 2세 등을 처형했다. 황제 한 사람만으로 제국 전체를 통치하는 것이 더이상 불가능하다고 본 그는 아들 갈리에누스를 서부지역 통치자로 임명했으며 자신은 페르시아의 침략을 물리치기 위해 군사를 이끌고 동쪽으로 갔다. 그러나 260년 6월 페르시아 왕 샤푸르 1세에게 붙잡혀 포로생활을 하다가 죽었다. 적군의 손에 잡혀 초라한 포로 신세가 된 것이다. 로마 제국의 33대 황제였던 푸불리우스 리키니우스 발레리아누스(253년 - 260년 재위) 가 바로 그 주인공으로 보통 발레리아누스 1세라고 부른다.여러번 로마군과 싸워 로마 황제 고르디아누스 3세 (238~244)는 전사했고 황제 발레리아누스 (253~260)를 포로로 잡을 정도로 페르시아 왕 샤푸르는 혁혁한 전공을 세웠다. 1.
* 넘겨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