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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칠원 읍성( 漆原邑城 , Chilwoneupseong ) 은 조선시대 칠원현의 중심에 세웠다고 한다. 칠원의 위치를 보면 남으로는 마산시와 동으로는 창원시 서쪽으로는 함안군 가야읍 북으로는 창녕군 남지읍이 있다. 구성리(龜城里) 일대에 있는 성으로 주변 지역에 민가가 들어서면서 석축(石築:城壁)은 대부분 허물어지고 일부만이 남아 있으나 그 또한 민가에서 집의 담 또는 울타리로 이용하면서 원형을 크게 변경시켰다. 성벽에 사용된 돌들은 장방형으로 가공한 것이며 가장 큰 돌은 97×40cm의 것도 있다. 옛 성벽의 자취를 찾을 수 있는 곳은 칠원 초등학교 서쪽으로 길이 29m, 높이 2.4m, 너비 2m 정도이며 내벽은 초등학교의 담장이고, 외벽은 성벽과 붙어 있는 논으로 미나리꽝으로 되어 있다. 초등학교의 담을 따라 교사(敎舍) 뒤편으로 약 200m쯤 가다 보면 길이 13m, 높이 2.4m의 성벽이 나타나며 현재는 구성리 728번지 정수식 씨의 집 울타리로 사용되고 있다. 읍성의 문지(門址)는 동쪽과 남쪽에 있는데, 동문지(東門址)는 길이 22m, 높이 2.4m, 너비 2.4m의 흔적만이 남아 있으며, 현재 원구성리 상수도 저장탱크가 설치되어 있다. 이 곳 주민 정수식 씨에 의하면 70년대 초 새마을사업을 하면서 성벽을 허물고 소방 도로를 만들었다고 한다. 남문지(南門址)는 동문지로부터 약 120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으며 외벽만 10m쯤 남아 있고 내벽은 칠원시장 안의 어시장으로 부분적으로 훼손되어 원형을 잃었다. 약 10년 전 까지만 해도 원형을 보존한 채 남아 있었다고 기억되나 불과 수 년 사이에 개발이란 미명(美名)과 군민과 당국의 무관심으로 파괴되어 가고 있어 우리의 문화 유적 보호에 대한 현실을 대변하고 있다. 칠원면소재지에 있는 성지로 주변에 민가가 들어서면서 석축은 허물어지고 일부는 남아 있으나 민가에서 담으로 이용하면서 원형을 변형시켰다. 그러나 칠원초등학교 서북간에 15m정도의 석축이 원형대로 남아있다. 석축의 가장 큰 돌이 길이 97㎝, 폭 40㎝로 거석은 보이지 않는다. 현재 성의 높이는 3~5m, 폭 3m로 구성동 728번지 정경조씨 담으로부터 남으로 부분적으로 몇 군데 석축이 보이는데 약 30m 정도는 확인할 수 있다. 조선시대 칠원현은 지금은 칠원,칠북,칠서로 나뉘어져 있고 3개면을 합쳐서 삼칠이라고 한다. 칠원읍성 앞에는 무릉산성이 있고 서쪽으로는 향교가 있다. 그리고 칠서면 뒤산에 봉화대가 있다. 여지도에 그려진 칠원읍성으로 성문은 2개로 표시되어있다. 칠원읍성 북문지를 발견한 경남문화재연구원에 따르면 초기에 4대문을 만들었지만 임진왜란 전후로 소실되고 나서 성곽으로 채워졌기때문에 이후 등장하는 고지도에는 북문지가 표시가 되지 않았던 것으로 추측한다고 합니다. 광여도에서 본 칠원읍성으로 여지도에 표시되지 않은 여장들이 표시되어져 있다. 또 칠원읍성의 형태도 둥글게 그려져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1914년 지적원도에 나타난 칠원읍성으로 동문과 서문에만 옹성이 보이고 남문에는 보이지가 않는다. 분류:함안의 산성 분류:읍성 분류:칠원 산성 분류:칠산성 분류:원산성 분류: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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