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촌홀(安寸忽)은 번조선의 수도 안덕향이였다. 기원전 340년에 번한에는 수한(水韓)이 즉위하였다. 이듬해 연나라의 배도(倍道)가 안촌홀(安村忽,안덕향 추정)을 공략하고 뒤이어 험독(險瀆,서우여 기자의 험독성)을 노략질하였다. 수유에 살던 기후(箕侯)가 군사를 일으켜 고조선을 지원하였다. 삼국사기에는 안시성을 ‘안촌홀’이라 했으며, ‘환도성’이라고도 하였다. 삼국사기 지리지에 따르면 본래 이름은 안촌홀(安寸忽)이다. 안시성은 자연적으로 험준한 요새였으며 주변에 병기의 주원료인 철광석 산지와 곡창지대가 있었다. 또한 연행록을 비롯하여 많은 문헌 기록에는 안시성을 '봉황성'이라 하였다. 고구려 안시성(安市城)이 있던 곳은 고대에 중국왕조(中國王朝)와 요동왕조(遼東王朝)가 서로 차지하려고 한 아주 중요한 군사요충지였다.
안촌홀(安寸忽)은 번조선의 수도 안덕향이였다. 기원전 340년에 번한에는 수한(水韓)이 즉위하였다. 이듬해 연나라의 배도(倍道)가 안촌홀(安村忽,안덕향 추정)을 공략하고 뒤이어 험독(險瀆,서우여 기자의 험독성)을 노략질하였다. 수유에 살던 기후(箕侯)가 군사를 일으켜 고조선을 지원하였다. 삼국사기에는 안시성을 ‘안촌홀’이라 했으며, ‘환도성’이라고도 하였다. 삼국사기 지리지에 따르면 본래 이름은 안촌홀(安寸忽)이다. 안시성은 자연적으로 험준한 요새였으며 주변에 병기의 주원료인 철광석 산지와 곡창지대가 있었다. 또한 연행록을 비롯하여 많은 문헌 기록에는 안시성을 '봉황성'이라 하였다. 고구려 안시성(安市城)이 있던 곳은 고대에 중국왕조(中國王朝)와 요동왕조(遼東王朝)가 서로 차지하려고 한 아주 중요한 군사요충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