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유 화상은 서기 97년 가락국 김수로왕과 허황후 사이에서 난 왕자 7명을 데리고 하동 칠불사에 온다. 승려인 그는 왕자들을 도와 운상원에서 기도한지 6년 만에 성불케 한다. 칠불사 외부에서 기다리던 그의 동생 허황후는 왕자들의 소식을 듣고 부리나케 달려와 천비연 앞에서 그들의 성불모습을 지켜본다. 알려진 대로 장유화상은 인도 아유타국의 왕자이면서 승려. 동생 허황옥과 함께 인도에서 파사석을 배에 싣고 인도양과 남중국해를 건너 김해 가락국으로 왔다. 허황옥은 가락국 김수로왕과 혼인해 10왕자를 뒀다. 한 왕자는 태자가 되고 두 왕자는 허황후의 성을 잇게 했으며 나머지 7왕자는 출가한 뒤 장유화상을 따라 하동 칠불사 운상원에서 성불한 것이다. 장유화상은 이에 앞선 서기 48년에 김해 가락국 굴암산·불모산 기슭에 장유사를 창건하고 수도했다. 이른바 장유사는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불교가 전래됐다는 남방불교전래설을 입증하는 사찰로 회자되고 있다. 인도 아유타→김해가락국→장유사→칠불사로 통하는 연결고리다. 이는 당초 고구려 소수림왕 때(서기 372년) 중국 전진에서 전래됐다는 북방불교전래설보다 300여년이 앞선 것이다. 분류:김수로 분류:화상 분류:장유 분류:유화
장유 화상은 서기 97년 가락국 김수로왕과 허황후 사이에서 난 왕자 7명을 데리고 하동 칠불사에 온다. 승려인 그는 왕자들을 도와 운상원에서 기도한지 6년 만에 성불케 한다. 칠불사 외부에서 기다리던 그의 동생 허황후는 왕자들의 소식을 듣고 부리나케 달려와 천비연 앞에서 그들의 성불모습을 지켜본다. 알려진 대로 장유화상은 인도 아유타국의 왕자이면서 승려. 동생 허황옥과 함께 인도에서 파사석을 배에 싣고 인도양과 남중국해를 건너 김해 가락국으로 왔다. 허황옥은 가락국 김수로왕과 혼인해 10왕자를 뒀다. 한 왕자는 태자가 되고 두 왕자는 허황후의 성을 잇게 했으며 나머지 7왕자는 출가한 뒤 장유화상을 따라 하동 칠불사 운상원에서 성불한 것이다. 장유화상은 이에 앞선 서기 48년에 김해 가락국 굴암산·불모산 기슭에 장유사를 창건하고 수도했다. 이른바 장유사는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불교가 전래됐다는 남방불교전래설을 입증하는 사찰로 회자되고 있다. 인도 아유타→김해가락국→장유사→칠불사로 통하는 연결고리다. 이는 당초 고구려 소수림왕 때(서기 372년) 중국 전진에서 전래됐다는 북방불교전래설보다 300여년이 앞선 것이다. 분류:김수로 분류:화상 분류:장유 분류:유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