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휴 또는 나휴(奈休)는 30세 단군으로 재위 35년이였다. 주나라와 수교하였다. 첫 해에 맏아들 등을(登乙)을 태자로 삼았다. 재위 원년 임자(BCE 909)년에 내휴 단군께서 남쪽으로 순수하여 청구의 정치 상황을 돌아보고 돌에 치우 천황의 공덕을 새기셨다. 서쪽으로 엄독홀에 이르러 분조의 여러 왕을 모았다. 제후국의 여러 한들과 만난후 병사들을 사열하고는 하늘에 제사지내고 주나라 사람들과도 수교를 맺었다. 2년에 기자 조선(奇子朝鮮)사람 40명이 입경(入京)하여 관광하였다. 5년에 북흉노(北凶奴)가 사신을 보내어 우호하기를 원하여 허락하였다. 단군 나휴(奈休)임금 28년(기묘B.C.882)에는 주태보(周太甫)라는 자가 신주역서(新周易書) 13권을 바쳤다.
내휴 또는 나휴(奈休)는 30세 단군으로 재위 35년이였다. 주나라와 수교하였다. 첫 해에 맏아들 등을(登乙)을 태자로 삼았다. 재위 원년 임자(BCE 909)년에 내휴 단군께서 남쪽으로 순수하여 청구의 정치 상황을 돌아보고 돌에 치우 천황의 공덕을 새기셨다. 서쪽으로 엄독홀에 이르러 분조의 여러 왕을 모았다. 제후국의 여러 한들과 만난후 병사들을 사열하고는 하늘에 제사지내고 주나라 사람들과도 수교를 맺었다. 2년에 기자 조선(奇子朝鮮)사람 40명이 입경(入京)하여 관광하였다. 5년에 북흉노(北凶奴)가 사신을 보내어 우호하기를 원하여 허락하였다. 단군 나휴(奈休)임금 28년(기묘B.C.882)에는 주태보(周太甫)라는 자가 신주역서(新周易書) 13권을 바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