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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환두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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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삼국시대의 여러 환두대도는 삼국시대에 접어들면서 환두대도는 광범위하게 사용된 걸로 추측된다. 이시기에 발굴된 무덤에서 환두대도가 다수 출토되기 때문이다. BC 400년경에는 이 땅에 철제 칼이 나타나고 BC 200년을 전후하여 우리 칼의 대명사라 할 수 있는 환두대도(A頭大刀)가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환두대도란 손잡이 끝부분에 둥근 고리가 있는 큰 칼이라는 뜻으로 후일 흔히 환도라고 부르는 칼에는 고리가 없어지나 칼자루 끝부분에 작은 구멍을 내어 그 흔적이 남아 있게 된다. 초기의 환두대도는 민고리로 시작되었으나 차츰 고리나 고리안에 나뭇잎· 귀면(鬼面) ·용(龍)·봉(鳳)의 장식을 더해 지위를 나타내게 되는데, 원래는 이 고리 안에 끈을 달아 매어 사용할 때 손에 감고 칼이 떨어지는 것을 방지한 데서 나온 것으로 추측된다. BC 100년경 고조선이 분열되면서 원삼국시대가 열리고 환두 대도는 고구려·백제· 신라·가야 등에서 보다 독자적으로 개발되어 다양해지고 날도 특별히 담금질한 극강(極剛)의 도로 변하며 이런 무기와 기능이 무력 집단에 의해 일본까지 건너가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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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삼국시대의 여러 환두대도는 삼국시대에 접어들면서 환두대도는 광범위하게 사용된 걸로 추측된다. 이시기에 발굴된 무덤에서 환두대도가 다수 출토되기 때문이다. BC 400년경에는 이 땅에 철제 칼이 나타나고 BC 200년을 전후하여 우리 칼의 대명사라 할 수 있는 환두대도(A頭大刀)가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환두대도란 손잡이 끝부분에 둥근 고리가 있는 큰 칼이라는 뜻으로 후일 흔히 환도라고 부르는 칼에는 고리가 없어지나 칼자루 끝부분에 작은 구멍을 내어 그 흔적이 남아 있게 된다. 초기의 환두대도는 민고리로 시작되었으나 차츰 고리나 고리안에 나뭇잎· 귀면(鬼面) ·용(龍)·봉(鳳)의 장식을 더해 지위를 나타내게 되는데, 원래는 이 고리 안에 끈을 달아 매어 사용할 때 손에 감고 칼이 떨어지는 것을 방지한 데서 나온 것으로 추측된다. BC 100년경 고조선이 분열되면서 원삼국시대가 열리고 환두 대도는 고구려·백제· 신라·가야 등에서 보다 독자적으로 개발되어 다양해지고 날도 특별히 담금질한 극강(極剛)의 도로 변하며 이런 무기와 기능이 무력 집단에 의해 일본까지 건너가게 되는 것이다. 도검(刀劍)은 청동기 시대부터 손잡이 부분과 칼몸 부분이 각각 나뉘어진 분리형으로 시작되어 초기 철기는 이것이 그대로 답습되는 형태(특히 劍)로 이어지다가 환두대도에 이르면 손잡이와 칼몸이 하나로된 일체형으로 바뀐다. 확실치는 않으나 이런 모양이 삼국 통일기인 7세기를 전후하여 칼몸이 곡선으로 휘는 곡도(曲刀)로 되면서 다시 칼몸과 손잡이가 분리되어 조립되는 식으로 정착된 후 천년 이상을 전해 내려오고 있다. 용·봉황을 장식한 큰 칼 환두대도는 주로 삼국 시대 무덤에서 출토되는 것으로 최고의 신분을 나타내는 위세품이며 그 형태나 장식정도, 재질에 따라서 무덤에 묻힌 사람의 신분이나 지위의 차이를 나타낸다. 함안 박물관 내부에는 1992년 가야읍 도항리 아파트 신축공사시 출토된 4∼5세기때 수장층의 말갑옷, 환두 대도, 옥재 목걸이와 같은 지배계급의 유물과 수레바퀴 모양 토기, 화염형 투창고배 등의 토기류를 비롯해 도항·말산리 고분군 발굴품이 전시되어 있다. 2005년 11월에는 서산시 음암면 부장리에서 백제 금동관과 철제 초두, 환두대두 등이 대량 출토돼 보원사의 백제시대 창건설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무령왕릉의 붕괴된 관 안에는 목침, 족좌(足座), 동경(銅鏡), 단룡환두(單龍環頭)의 칼, 울두와 동제(銅製)의 용기류 화염형관식(火焰形冠飾), 수식(首飾), 이식(耳飾), 과대, 식리(飾履) 등이 있었다. 백제시대 칼은 양쪽에 날이 있는 선사시대 이래의 전통적인 검과 달리 한쪽에만 날이 있는 도(刀)이다. 검이 찌르는 기능이 위주라면, 도는 한쪽 날의 강력함을 이용해 베는 기능을 수행하는 병기다. 이 때문에 칼은 철기와 함께 발달해 왔다. 중국 한대(漢代)에 단조 철기가 발달하면서 철제 장검이 등장했고 이어 철제 칼이 발달하게 되는데, 손잡이의 끝부분이 둥근 고리형으로 되어 있고 무늬가 없는 소환두대도(素還頭大刀)부터 제작된다. 이러한 큰칼은 3세기대의 마한 지역 수장층에게 대형의 창과 함께 급속히 확산, 보급됐다. 4세기 무렵부터 백제의 환두대도는 급격한 전기를 맞이해, 이전에 비해 칼끝이 뚜렷하게 날카로워지고 둥근 고리나 손잡이 부분을 여러 가지 방법으로 화려하게 장식한 장식 대도가 점차 유행하게 된다. 이 장식 대도는 백제 지역의 뛰어난 금속 세공기술의 발달에 힘입은 것으로서, 백제 지역 재지 세력들의 수장급 고분에서 주로 출토되고 있어 백제의 지방 지배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위세품으로 생각된다. 천안 용원리 고분에서는 소환두도, 상감환두도, 용봉문 환두도 등의 다양한 장식대도가 출토되었는데, 가장 대표적인 유물은 ‘용봉문환두대도’이다. 고구려는 백제의 환두대도를 수용하였다. 다만 고구려, 백제의 멸망 이후 통일신라시대를 거치면서 자체적인 칼의 발전이 이루어지고 당나라의 문물을 지속적으로 받아들였으므로 보다 화려한 장식 도검이 다수 발견된다. 금동환두이자대도는 두 개의 삼엽 환두도의 도신칼집 위에 다시 두 개의 작은 삼엽 환두도를 붙이고, 아랫부분에 다시 환두도 병부가 두 개 덧붙여 있는 것으로 끝 부분을 물고기 꼬리 모양으로 마감 장식하였다. 겉면에는 환계문(環繫文)이 새겨져 있는 얇은 금동판을 씌워 장식하였고, 끝 부분인 물고기 꼬리형 장식판에는 주록(周綠)에 파장점열문(波狀點列文)을, 내부에는 좌우 대칭의 사점선문(斜點線文)을 가득 장식했다. 이 금동환두이자대도의 도신은 X선 촬영에 의해 나무로 확인되었으며, 이것은 의식용이나 지휘자의 권위 상징용으로 쓰였다. 분류: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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