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tract
| - 우왕비는 우가 세운 치수 기념비로 대우 치수의 공적을 적은 것이다. 우왕비는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석각이며, 비 위에는 기괴하고 특이한 고전문이 새겨져 있고, 글자는 77자이며 글자의 형태는 올챙이와 같으나 갑골문이나 푸른색으로 옛스러워 알기 어렵다. 황제릉과 염제릉과 함께 중국의 3대 보배중의 하나다. 우왕비는 돌벽에 새겨 넓이는 140cm, 높이는 184cm로 비문은 모두 77자로 글자체는 푸르고 오래되어 알아보기 어렵고, 송나라 가정연간에 여기에 새겼다. 1935년에 석정을 세워 보호하고 있으며 정자의 옆에 청나라 구양정환의 대관이라 쓴 석각이 있고 호남성의 중요한 문물보호 구역이다. 우왕비는 원래 남악의 형산에서 나왔으며 악록산의 비는 송나라 시대에 사람들이 형산에서 탁본한 것의 복제품이다. 우왕비의 글자체는 기이하고 옛스러우며 해독하기 어려워 비문은 우의 치수의 공을 받들어 위대한 업적을 적고 노래한 것이라 전하여 하나의 공덕비가 되며 송나라 시대에 사람들이 형산에서 탁본한 것의 복제품이다. 진짜 우왕비는 당나라 시대에 아직 형산에 있었으며 한유 유우석이 부와 시로서 노래하였으며 일찌기 남악의 보배라 불렸다. 문물보호계에 있어서 우왕비와 황제릉, 염제릉은 함께 중화민족의 3대 보배가 된다 우왕비는 형산의 구루봉에서 최초 발견되어 구루비라 부르며 우의 치수의 치수공적을 새기고 노래하고 있다. 우는 아버지를 이어 치수하였고, 7년동안 즐거운 것을 듣지않고, 3번이나 집앞을 지나면서도 들어가지 않았다는 미담이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다. 제우(帝禹)는 우왕(禹王)을 높여 부른 명칭이며 우가 치수공적비를 세울 당시 2,267경에 순임금의 신하로서 사공의 벼슬에 있었고 우가 왕이 된 해는 2224년 이다. 비문의 주요 기록은 대우 치수의 공적을 적은 것이다. 서안비림, 소흥우릉, 운남법화산, 무창황학루 등지에 모두 이 비가 남색본으로 번역되어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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