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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포상팔국(浦上八國)은 가야 시대에 가야의 남부 지역에 있던 8개 나라를 지칭한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약간의 기록이 전한다. 포상팔국에 속한 8개 나라 보라(保羅), 고자(古自), 사물(史勿), 초팔(草八), 골포(骨浦), 칠포(柒浦), 가리(加利), 성산(星山) 중에 전해지는 곳은 대략 5개국이다. 당시 함안, 울산지역은 대륙 진출 교두보 전쟁 패배 후 급성장한 안라국으로 편입한 포상팔국은 삼한시기에 변한 지역에서 자리잡고 있었으며, 바닷가와 접해 있었던 여덟 개의 나라였다. 통영시는 포상팔국 중 고자국에 속하였으며, 뒤에 고자군을 설치하였다. 742~764년 (경덕왕) 고자군을 고성군으로 개칭하였고. 757(경덕왕 6년)고성군의 9주중 강주에 속하였다. 995년(성종 14)산남도의 고주자사에 속하였다. 1018년(현종 9) 거제현에 속한다. 사천시의 문헌상 처음 이름은 3세기 초 포상팔국 중의 하나인 사물국(史勿國)이다. 그 뒤 삼국의 정립으로 신라와 백제의 틈바구니에서 이 지역은 한때 백제에 속하기도 했으나, 6세기 경 법흥왕대에 이르러 신라에 속하였다. 그외에도 칠포국 등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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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 - 포상팔국(浦上八國)은 가야 시대에 가야의 남부 지역에 있던 8개 나라를 지칭한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약간의 기록이 전한다. 포상팔국에 속한 8개 나라 보라(保羅), 고자(古自), 사물(史勿), 초팔(草八), 골포(骨浦), 칠포(柒浦), 가리(加利), 성산(星山) 중에 전해지는 곳은 대략 5개국이다. 당시 함안, 울산지역은 대륙 진출 교두보 전쟁 패배 후 급성장한 안라국으로 편입한 포상팔국은 삼한시기에 변한 지역에서 자리잡고 있었으며, 바닷가와 접해 있었던 여덟 개의 나라였다. 통영시는 포상팔국 중 고자국에 속하였으며, 뒤에 고자군을 설치하였다. 742~764년 (경덕왕) 고자군을 고성군으로 개칭하였고. 757(경덕왕 6년)고성군의 9주중 강주에 속하였다. 995년(성종 14)산남도의 고주자사에 속하였다. 1018년(현종 9) 거제현에 속한다. 사천시의 문헌상 처음 이름은 3세기 초 포상팔국 중의 하나인 사물국(史勿國)이다. 그 뒤 삼국의 정립으로 신라와 백제의 틈바구니에서 이 지역은 한때 백제에 속하기도 했으나, 6세기 경 법흥왕대에 이르러 신라에 속하였다. 창원은 상고시대부터 바다와 육지의 교통이 편리하여 사람들이 왕래가 많았던 곳이었다. 그래서 포상팔국 중의 하나인 골포국, 그러니까 삼한 안에서도 작은 국가를 이루고 있었다. 그외에도 칠포국 등이 있었다. 삼국사기의 기록을 살펴보면 14년 가을 7월에 골포국을 위시한 포상팔국이 가라를 침범해 왔으므로(물계자전에서는 아라로 쓰여있다) 가라 왕자가 구원을 청해왔다. 내해 이사금이 태자 우로와 이벌찬이음(利音)을 남해안 연안으로 보내어 전쟁에 나섰다. 8국의 장수를 죽이고 6천명을 빼앗아 돌아왔다. 함안 안라국이 포상팔국을 배후 지원한 것으로 여겨진다. 포상팔국 전쟁은 김해의 가락국을 중심으로 한 전기가야 연맹이 분열되는 계기가 되었다. 서기 201~212 년 시기에는 포상팔국 전쟁과 고령과 함안간의 전쟁이 있었다. 소잔명존은 고령 함안간의 전쟁을 일으킨다. 고령과 함안전쟁이후 이것이 화근이 되어 포상팔국의 전쟁을 부추기게 된 것으로 보여진다. 무역독점을 해오던 금관가야에 타격을 주기위해 포상팔국이 타도 금관가야를 외치며, 전쟁을 걸게 되는 것이다. 분류:가야 분류:아라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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