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9 혁명은 1960년 4월 학생들이 중심 세력이 되어 일으킨 민주주의 혁명. 4월 혁명, 4·19 의거라고도 한다. 이승만 정권을 몰아낸 4.19 혁명은 5.16 쿠데타로 이어진다. 12년째 대통령을 하고 있던 이승만의 나이는 85세의 고령. 선거는 1960년 3월 15일에 치뤄졌다. 자유당에서는 대통령에 이승만 부통령에 이기붕. 그리고 민주당에서는 각각 조병옥과 장면을 내세운다. 허나 선거를 한달 앞두고 조병옥이 지병 치료차 방문한 미국에서 사망한다. 하지만 선거는 나이든 이승만이 죽었을때를 생각하여 대통령보다는 부통령이 누가 되느냐였고 때문에 부통령 선거가 대통령 선거였다. 민주당은 국민들에게 호소했다. 조병옥이 죽었으니 부통령 만이라도 장면이 되게 해달라고 .... 그러나 자유당의 바람에도 불구하고 이기붕이 당선되었다. 물론 부정선거였다. 국민들은 항의 하였고 급기야 이승만 정부는 선거 당일 마산에서 십여명의 사망자를 만들어 낸다. 그 중 하나가 김주열 열사이며 , 실종 28일만인 4월 11일 그것도 눈에 최루탄을 맞고 바다에 둥둥 떠 있는 변사체로 발견된 것이다. 국민들은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4.19 혁명은 1960년 4월 학생들이 중심 세력이 되어 일으킨 민주주의 혁명. 4월 혁명, 4·19 의거라고도 한다. 이승만 정권을 몰아낸 4.19 혁명은 5.16 쿠데타로 이어진다. 12년째 대통령을 하고 있던 이승만의 나이는 85세의 고령. 선거는 1960년 3월 15일에 치뤄졌다. 자유당에서는 대통령에 이승만 부통령에 이기붕. 그리고 민주당에서는 각각 조병옥과 장면을 내세운다. 허나 선거를 한달 앞두고 조병옥이 지병 치료차 방문한 미국에서 사망한다. 하지만 선거는 나이든 이승만이 죽었을때를 생각하여 대통령보다는 부통령이 누가 되느냐였고 때문에 부통령 선거가 대통령 선거였다. 민주당은 국민들에게 호소했다. 조병옥이 죽었으니 부통령 만이라도 장면이 되게 해달라고 .... 그러나 자유당의 바람에도 불구하고 이기붕이 당선되었다. 물론 부정선거였다. 국민들은 항의 하였고 급기야 이승만 정부는 선거 당일 마산에서 십여명의 사망자를 만들어 낸다. 그 중 하나가 김주열 열사이며 , 실종 28일만인 4월 11일 그것도 눈에 최루탄을 맞고 바다에 둥둥 떠 있는 변사체로 발견된 것이다. 국민들은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4월 18일 고대 학생들이 가장 먼저 거리로 뛰쳐 나갔다. 그러나 자유당 이승만 정부는 이정재 등 깡패들을 동원하여 그들을 저지키 위해 피습했다. 그것은 이정재와 동향이자 후배였던 곽영주 경호실장 (이승만의) 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결국 깡패들과 곽영주는 그 다음해인 1961년 5월 16일 쿠데타를 일으킨 박정희가 국민의 민심을 얻기위해 그들을 다 잡아들였고 그해, 지난해 3.15 부정선거범들까지 10월과 12월에 다 죽여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