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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안은 북제의 수도였다. 고환은 동위의 실권자였으며, 북제(北齊)의 사실상의 건국자이다. 그는 발해군(渤海郡) 군수(郡?)-현재 하북 경현(景縣)-사람으로, 그 근방에 있던 회삭진(懷朔鎭: 北魏六鎭의 하나, 歸綏 북서부)에 있던 선비족(鮮卑族) 계통의 출신인 것으로 보인다. 북위 말에 육진(六鎭)의 난에 가담했으나, 나중에 항복하여 이주영(爾朱榮)의 부장(部將)이 되었으며, 그가 죽고 난 후에는 하북(河北)로 나와 발해군의 호족(豪族) 고건(高乾) 등과 손을 잡고 자립하였다. 이주(爾朱) 씨 일족의 내분을 틈타 그들의 근거지인 산서를 차지하였으며, 효무제(孝武帝)를 세워 북위의 실권을 쥐었다. 그러나 효무제가 장안(長安)의 우문태(宇文泰)에게 가서 의탁하자, 동위의 효정제(孝靜帝)를 세워 업(?)으로 천도해, 동위의 실권자가 되었다. 북위가 동서로 분열되자 동위(東魏)의 효정제의 궁정에서 승상을 지냈다. 고환은 북위의 화화정책(華化政策)에 불만을 가진 군벌(軍閥)을 기반으로 태행산맥 동쪽의 산동, 하북을 지배하였고, 서위(西魏)의 우문태와 대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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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안은 북제의 수도였다. 고환은 동위의 실권자였으며, 북제(北齊)의 사실상의 건국자이다. 그는 발해군(渤海郡) 군수(郡?)-현재 하북 경현(景縣)-사람으로, 그 근방에 있던 회삭진(懷朔鎭: 北魏六鎭의 하나, 歸綏 북서부)에 있던 선비족(鮮卑族) 계통의 출신인 것으로 보인다. 북위 말에 육진(六鎭)의 난에 가담했으나, 나중에 항복하여 이주영(爾朱榮)의 부장(部將)이 되었으며, 그가 죽고 난 후에는 하북(河北)로 나와 발해군의 호족(豪族) 고건(高乾) 등과 손을 잡고 자립하였다. 이주(爾朱) 씨 일족의 내분을 틈타 그들의 근거지인 산서를 차지하였으며, 효무제(孝武帝)를 세워 북위의 실권을 쥐었다. 그러나 효무제가 장안(長安)의 우문태(宇文泰)에게 가서 의탁하자, 동위의 효정제(孝靜帝)를 세워 업(?)으로 천도해, 동위의 실권자가 되었다. 북위가 동서로 분열되자 동위(東魏)의 효정제의 궁정에서 승상을 지냈다. 고환은 북위의 화화정책(華化政策)에 불만을 가진 군벌(軍閥)을 기반으로 태행산맥 동쪽의 산동, 하북을 지배하였고, 서위(西魏)의 우문태와 대립하였다. 수나라는 남조 진나라를 명말시킨 이후에 수문제는 북제의 수도 장안의 남동쪽에, 한(漢:Han)의 장안성(長安:Changan城) 동쪽 지방에 새로운 도성(都城)인 대흥성(大?城)을 만들었다. 문제는 대흥성을 수축함과 동시에 위수가 모래가 많아 배가 다니기에 불편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고자 공사를 시작하였다. 그런데 성을 지은 사람은 서역 출신의 우문개(宇門愷)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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