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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소제는 전한의 8대 황제였다. 기원전 87년 무제 사후 한 소제가 즉위하고 곽광(涇光), 김일제(金日喪), 상관걸(上官桀) 등이 유지를 받들어 정무를 보좌하였다. 상관걸 일당은 곽광을 고발하는 연왕의 편지를 위조하여 한소제에게 올리게 했다. 한소제가 즉위하자 연왕 유단은 원한을 품고 역모를 죄했는데, 평소 곽광을 질투하고 있던 상관걸이 연왕과 공모했다. 한사군은 설치 20여년만인 한나라 소제 때, 기원전 82년에는 진번군, 임둔군을 폐지하였고 중국의 낙랑군은 의무려산 서쪽으로 내려갔다. 현토군은 한나라 무제 3년(서기전 108년) 설치되었다. (현토)군의 치소는 처음 옥저성에 두었다가 한나라 소제 시원 5년(서기전 82년) 고구려 현으로 옮겼다. 지리산의 북쪽 기슭에는 반야봉이 있고 그 봉우리 좌우에는 黃嶺과 鄭嶺이라는 두 고개가 있다. 옛날 한나라 소제(B.C. 87~74)가 즉위한 지 3년에 마한의 왕이 진한과 변한의 난리를 피하여 이곳에 도성을 쌓았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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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소제는 전한의 8대 황제였다. 기원전 87년 무제 사후 한 소제가 즉위하고 곽광(涇光), 김일제(金日喪), 상관걸(上官桀) 등이 유지를 받들어 정무를 보좌하였다. 상관걸 일당은 곽광을 고발하는 연왕의 편지를 위조하여 한소제에게 올리게 했다. 한소제가 즉위하자 연왕 유단은 원한을 품고 역모를 죄했는데, 평소 곽광을 질투하고 있던 상관걸이 연왕과 공모했다. 한사군은 설치 20여년만인 한나라 소제 때, 기원전 82년에는 진번군, 임둔군을 폐지하였고 중국의 낙랑군은 의무려산 서쪽으로 내려갔다. 현토군은 한나라 무제 3년(서기전 108년) 설치되었다. (현토)군의 치소는 처음 옥저성에 두었다가 한나라 소제 시원 5년(서기전 82년) 고구려 현으로 옮겼다. 지리산의 북쪽 기슭에는 반야봉이 있고 그 봉우리 좌우에는 黃嶺과 鄭嶺이라는 두 고개가 있다. 옛날 한나라 소제(B.C. 87~74)가 즉위한 지 3년에 마한의 왕이 진한과 변한의 난리를 피하여 이곳에 도성을 쌓았다. [한단고기]]에는 "한나라 소제(B.C.87~74)때, 고두막이 부여의 옛도읍을 차지하여 동명이라고 나라 이름을 부르니 이것이 곧 신라의 옛땅이다. 누란이 중간에서 길을 막고 한나라 사신을 자주 공격했기 때문에, 한나라 소제 원봉 4년(昭帝元鳳四年: 기원전 77)에 대장군 곽광( 光)이 전개자(傳介子)를 보내어 누란왕을 참살했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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