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건련(目連, Moggallana) 신통제일(神通第一)은 신통력(神通力)이 가장 훌륭한 제자(弟子)이다. 석가모니 부처님께 귀의한 뒤 신통(神通)을 잘 익혀 신통력을 가지고 부처님의 법을 전하려는 것을 방해하는 사람들을 물리치고 능히 시방(十方)을 날아다녔으므로 신통제일(神通第一)이라 불렸으며 우란분(盂蘭盆)의 기원이 되기도 한 제자이다. 마가다국 라자가하(王舍城) 근교 코리가 마을에서 태어났으며 건장하고 학문에 통달하여 인근 나라다 마을의 사리풋타(舍利弗)와 함께 사람들의 칭찬이 자자했다. 두 사람은 서로 친하여 어느 날 바라문교의 제사를 함께 구경한 뒤 인생의 무상함을 느껴 라자가하의 유명한 회의론자인 산자야 문하로 들어갔으며 곧 스승을 대신할 만큼 지혜를 얻었으나 완전한 마음의 평화를 얻지는 못했다. 그러던 중 라자가하의 거리에서 탁발을 하던 부처님의 제자 앗사지(馬勝, 아설시)를 만나 연기(緣起)의 가르침을 들은 사리풋타(사리불)의 권유로 산자야의 제자 250명과 함께 죽림정사를 방문해 부처님께 귀의하였다. 불교에 귀의 후 1개월만에 아라한과(阿羅漢果)를 얻었으며 사리풋타와 함께 점차 불교교단의 중심인물로 부각되었다.
목건련(目連, Moggallana) 신통제일(神通第一)은 신통력(神通力)이 가장 훌륭한 제자(弟子)이다. 석가모니 부처님께 귀의한 뒤 신통(神通)을 잘 익혀 신통력을 가지고 부처님의 법을 전하려는 것을 방해하는 사람들을 물리치고 능히 시방(十方)을 날아다녔으므로 신통제일(神通第一)이라 불렸으며 우란분(盂蘭盆)의 기원이 되기도 한 제자이다. 마가다국 라자가하(王舍城) 근교 코리가 마을에서 태어났으며 건장하고 학문에 통달하여 인근 나라다 마을의 사리풋타(舍利弗)와 함께 사람들의 칭찬이 자자했다. 두 사람은 서로 친하여 어느 날 바라문교의 제사를 함께 구경한 뒤 인생의 무상함을 느껴 라자가하의 유명한 회의론자인 산자야 문하로 들어갔으며 곧 스승을 대신할 만큼 지혜를 얻었으나 완전한 마음의 평화를 얻지는 못했다. 그러던 중 라자가하의 거리에서 탁발을 하던 부처님의 제자 앗사지(馬勝, 아설시)를 만나 연기(緣起)의 가르침을 들은 사리풋타(사리불)의 권유로 산자야의 제자 250명과 함께 죽림정사를 방문해 부처님께 귀의하였다. 불교에 귀의 후 1개월만에 아라한과(阿羅漢果)를 얻었으며 사리풋타와 함께 점차 불교교단의 중심인물로 부각되었다. 데바닷타(提婆達多)가 부처님에게 반대해 교단이 분열 위기에 처했을 때도 수행자들을 설득해 혼란을 수습했다. 코살라국의 비두다바왕이 샤카족을 멸망시키려 할 때도 그는 신통력으로 카필라성에 철제방을 쌓아 막으로 했으나 샤카족의 멸망은 업의 과보라는 부처님의 만류로 그만둔 적이 있다. 이에 따라 불교교단에 반대하거나 데바닷타를 따르는 무리들의 그에 대한 박해도 점차 거세졌다. 말년에 그는 라자가하에서 집장외도(執杖外道) 일파에게 몽둥이로 맞아서 뼈가 부러지고 살점이 떨어져나갈 지경까지 이르렀다. 이것을 본 사리풋다가 물었다. “그대는 신통제일로 불릴 만큼 훌륭한 법력을 가지고 있는데 왜 피하지 못했는가” “나는 전생에 부모를 괴롭힌 과보를 받는 것일 뿐이네” 목갈라나의 대답은 오히려 담담할 뿐이었다. 이러한 일에 대해서 또한 부처님은 “그는 전생에 아내에게 속아 부모를 숲속에 버렸다. 그 악업이 아직도 남아 박해를 받는 것이다”라고 하셨다. 이 사건 이후 부처님께 입적을 허락받은 뒤 고향 코리가로 돌아갔다. 코리가에서 마지막 순간까지 사람들에게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하고 전생의 인연에 따라 집장 바라문에게 와석(瓦石)을 맞아 부처님보다 먼저 입적하였다. 한편 우란분재(盂蘭盆齋)는 목련존자가 어머니가 죄를 지어 아귀도(餓鬼道)에 떨어져 있을 때 대중에게 공양(供養)을 올려 그 혼령(魂靈)을 구제한 것에 기원한 것으로 이날(음력 7월 보름)은 여러 가지 음식을 만들어 조상의 영전(靈前)에 바치어 아귀(餓鬼)에 시주(施主)하고 조상의 명복(冥福)을 빌며 그 받는 고통을 구제하고자 재를 올린다. 이를 민속절기(民俗節氣)인 백중(百中(衆))이라고도 한다. 분류:불교 신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