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릉하(大凌河)는 고죽국의 강이였다. 예맥족은 남하하다가 천혜의 요새인 대릉하 유역을 발견하고, 여기서 고조선을 건국했던 것이며 따라서 고조선의 발상지는 요서 대릉하 유역이라고 보는 것이 있다. 소위 제후국이라는 진번은 단군 왕검의 세째 아들 부우가 봉해진 나라이다. 진번국은 지금의 요동반도 서쪽으로 대릉하 중북부 지역이 되며, 대략 적봉시 동쪽이 된다. 적봉시를 중심으로 그 서쪽에는 구려국이 있었다. 대릉하 의현은 춘추시대 고죽국에 속하여 서우여의 서쪽 영역은 대릉하 상류인 객좌(喀左), 능원, 우하량까지로 고려되며 동남쪽으로는 한반도까지 통할한다. 대릉하 의현은 전국시대 요서군에 속하고 서한때는 교려현이 있었는데 요서군 동부도위치소고 후한 때는 창려현이라 하였다. 고구려는 370년 말~376년 초경에 유주를 확보하였다가 그 즈음 주동적으로 철수하였지만 여전히 대릉하 하류~의무려산 계선 이동 지역을 확보하였다. 요서군은 지금의 유성에서부터 북평 사이에 있었다. 백제는 진나라 때 요서군, 진평군 2군을 가지고 있었다. 553년은 대릉하 유역에 영주가 복치된(525년 경) 이후였다.
대릉하(大凌河)는 고죽국의 강이였다. 예맥족은 남하하다가 천혜의 요새인 대릉하 유역을 발견하고, 여기서 고조선을 건국했던 것이며 따라서 고조선의 발상지는 요서 대릉하 유역이라고 보는 것이 있다. 소위 제후국이라는 진번은 단군 왕검의 세째 아들 부우가 봉해진 나라이다. 진번국은 지금의 요동반도 서쪽으로 대릉하 중북부 지역이 되며, 대략 적봉시 동쪽이 된다. 적봉시를 중심으로 그 서쪽에는 구려국이 있었다. 대릉하 의현은 춘추시대 고죽국에 속하여 서우여의 서쪽 영역은 대릉하 상류인 객좌(喀左), 능원, 우하량까지로 고려되며 동남쪽으로는 한반도까지 통할한다. 대릉하 의현은 전국시대 요서군에 속하고 서한때는 교려현이 있었는데 요서군 동부도위치소고 후한 때는 창려현이라 하였다. 고구려는 370년 말~376년 초경에 유주를 확보하였다가 그 즈음 주동적으로 철수하였지만 여전히 대릉하 하류~의무려산 계선 이동 지역을 확보하였다. 요서군은 지금의 유성에서부터 북평 사이에 있었다. 백제는 진나라 때 요서군, 진평군 2군을 가지고 있었다. 553년은 대릉하 유역에 영주가 복치된(525년 경) 이후였다. 황해도에 있었다는 낙랑 대방이 지금의 요하 좌편 대릉하에 있었던 증거가 수서에 나타난다 -수서(지리지)의 요서군 편에 낙랑군 과 대방현 이 나타나니 낙랑과 대방은 당연히 지금의 대릉하 유역에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