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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삼국 통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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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삼국 통일[三國統一]은 신라가 고구려·백제를 멸망시키고 한반도에서 최초로 통일 국가를 수립했던 역사적 사건이다. 5세기 중엽까지 고구려의 영향 아래에 있던 신라는 정치·경제·문화의 각 방면에서 후진성을 극복하고 국력을 강화했다. 신라는 고구려가 평양으로 수도를 천도하고 남진 정책을 추진하자 고구려와의 우호 관계를 단절하고 백제와 동맹을 맺어 대항했다. 신라는 6세기 초반 우경(牛耕)의 보급, 수리관개시설의 확충으로 농업 생산력이 급격히 증대하면서 국력을 신장시켰으며, 이를 발판으로 대외적인 팽창을 활발히 전개했다. 먼저 532년(법흥왕 19)에 금관 가야를 병합하여 가야 진출의 교두보를 마련했으며, 551년(진흥왕 12)에는 왕위 계승 분쟁으로 국력이 약화된 고구려를, 백제와 연합해 죽령 이북 고현(高峴:지금의 철령) 이남 고구려 10군의 땅을 점령했다. 이때 백제는 고구려의 남평양(지금의 서울 부근)을 점령했다. 또한 신라는 554년에 백제가 차지한 한강 하류 지역을 불시에 기습해 장악했다. 이에 격분한 백제의 성왕(聖王)이 신라 관산성(管山城:지금의 옥천)을 공격했으나 신라의 장군 김무력(金武力)에게 패퇴하고 말았다. 그뿐 아니라 신라는 백제와 연합한 대가야를 562년에 정복하여 가야지역을 완전 병합했다. 이 시기에 신라는 동해안 쪽으로도 진출하여 오늘의 함경남도 이원(利原) 일대까지 영토를 확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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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삼국 통일[三國統一]은 신라가 고구려·백제를 멸망시키고 한반도에서 최초로 통일 국가를 수립했던 역사적 사건이다. 5세기 중엽까지 고구려의 영향 아래에 있던 신라는 정치·경제·문화의 각 방면에서 후진성을 극복하고 국력을 강화했다. 신라는 고구려가 평양으로 수도를 천도하고 남진 정책을 추진하자 고구려와의 우호 관계를 단절하고 백제와 동맹을 맺어 대항했다. 신라는 6세기 초반 우경(牛耕)의 보급, 수리관개시설의 확충으로 농업 생산력이 급격히 증대하면서 국력을 신장시켰으며, 이를 발판으로 대외적인 팽창을 활발히 전개했다. 먼저 532년(법흥왕 19)에 금관 가야를 병합하여 가야 진출의 교두보를 마련했으며, 551년(진흥왕 12)에는 왕위 계승 분쟁으로 국력이 약화된 고구려를, 백제와 연합해 죽령 이북 고현(高峴:지금의 철령) 이남 고구려 10군의 땅을 점령했다. 이때 백제는 고구려의 남평양(지금의 서울 부근)을 점령했다. 또한 신라는 554년에 백제가 차지한 한강 하류 지역을 불시에 기습해 장악했다. 이에 격분한 백제의 성왕(聖王)이 신라 관산성(管山城:지금의 옥천)을 공격했으나 신라의 장군 김무력(金武力)에게 패퇴하고 말았다. 그뿐 아니라 신라는 백제와 연합한 대가야를 562년에 정복하여 가야지역을 완전 병합했다. 이 시기에 신라는 동해안 쪽으로도 진출하여 오늘의 함경남도 이원(利原) 일대까지 영토를 확장했다. 신라가 대외 팽창을 활발히 전개하자 백제와 고구려는 긴밀한 협조 체제를 이루며 대응했다. 백제는 560년 이후, 고구려는 7세기초 이후에 신라에 대한 적극적인 공세를 벌였다. 백제와 고구려는 자주 신라의 국경을 공격했지만, 수(隋)와 당(唐)이 고구려를 침략하자 주춤하게 되었다. 백제와 고구려의 신라에 대한 공세는 7세기 중반에 다시 활발해졌다. 642년 백제는 의자왕이 군대를 이끌고 신라의 서쪽 40여 개 성을 빼앗았고 이어서 장군 윤충(允忠)이 대야성(大耶城:지금의 합천)을 함락시켰다. 이 싸움에서 김춘추의 사위였던 성주 김품석(金品釋)과 그의 처자가 백제군에게 살해당했다. 위기감을 느낀 신라는 김춘추를 고구려에 보내 군사적 지원을 요청했으나 거절당하자, 당나라에 사신을 보내 당과 밀착하기 시작했다. 더욱이 643년 고구려의 지원을 받은 백제가 신라의 관문인 당항성(黨項城:지금의 남양)을 점령하려 하자 신라는 당에 지원을 요청했다. 이에 당나라는 고구려와 백제가 신라를 침략할 때마다 사신을 보내 군사 행동을 중지하도록 강요했다. 그리고 648년 당에 사신으로 간 김춘추와 당태종은 고구려와 백제를 멸망시키기로 하고, 정치적·군사적인 동맹체제를 더욱 긴밀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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