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tract
| - 악의는 전쟁을 발동해 근 반년 사이 제나라의 70여개 성읍(城邑)을 함락했는데 제나라는 단 요성(聊城), 거성, 즉묵(卽墨, 지금의 평도현 일대) 3개성만 남았는데 수차 공격했으나 공략을 할 수가 없었다. 악의는 이제 더는 군사로써 점령할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공격하지는 않고 포위만 하는 한편, 현지문물을 보호하고 세금을 감하고 선정을 베풂과 아울러 현지인들의 풍속습관을 존중하는 등 장구지책으로 그 뿌리에서부터 제나라를 완전히 소멸할 작전을 펼치기 시작했다. 이렇게 악의는 5년간 제나라의 점령지에 있었는데 이때 제나라의 70여개 성읍은 이미 연나라 판도로 들어가 연나라는 전에 없이 강성하게 되었다. 하지만 세상일이란 사람의 뜻대로만 되는 게 아니었다. 기원전 278년 연소왕이 돌아가고 연혜왕(燕惠王)이 즉위하면서 사태는 급변하기 시작, 원래 태자시절에 악의와 알륵이 있었던 연혜왕이 그만 제나라 모사 전단(田單)의 반간계에 들게 되었다. 연혜왕과 악의 사이에 알륵이 있음을 안 전단은 슬그머니 연나라에 세작을 보내 악의가 제나라를 점령한 다음 연나라를 배반하고 제나라 왕이 될 궁리를 하고 있다는 소문을 퍼뜨렸다. 악의는 반년 동안 제나라의 70여개 도읍을 함락했는데 마지막 3개는 왜 5년이 되도록 함락하지 못하느냐, 바로 기회를 보아 제나라를 멸한 다음 자기가 제나라 왕이 되기 위해서라는 소문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악의에 좋은 인상이 없었던 연혜왕은 반간계에 넘어가 인차 악의의 군사지휘권을 삭탈하고 기겁(騎劫)을 상장군으로 보내 악의를 대체하도록 했다. 이젠 대세가 다 기울어짐을 안 악의는 연나라로 갔다가 혹시 목숨까지 잃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연나라로 돌아가지 않고 조나라로 옮겼다. 노중련의 또다른 활약은 연나라 '악의' 장군이 버티고 있는 요성을 수복한 데 있다. 제나라 전단이 요성을 포위한 지 1년 되도록 함락하지 못했다. 이때 악의는 연혜왕과 사이가 좋지 않아 불편한 관계에 있었다. 노중련은 국제상황, 제나라의 분투, 악의가 처한 상황을 차례로 짚어주면서 악의가 요성을 버리고 돌아가도록 종용했다. 먼저 국제 상황은 제민왕의 오만을 깨기 위해 조,한,위,초,연이 합종을 하여 일시 성과를 냈으나 현재로서는 초나라와 위나라는 군사를 물려 제나라에서 떠나는 중이다. 또한 연나라에 악의를 구원하기 위해 구원병을 파견하지 않고 있다. 게다가 제나라의 모든 병력은 요성에 집결하고 있다. 연혜왕은 악의를 신임하지 않는다. 오히려 율복 등이 군사를 거느리고 조나라를 쳤으나 염파 장군에게 당해 오히려 연나라 수도가 포위되는 일이 벌어졌다. 요성의 상황은 더욱 어렵다. 배고픔을 극복하기 위해 사람 고기를 먹고 사람 뼈를 땔감으로 쓰고 있는 지경이다. 이런 상황론을 전개한 노중련은 그간 악의가 이룬 공로가 매우 크다는 사실을 지적하였다. 그런데다 요성의 병력을 온전히 연나라로 되돌릴 수 있다면 연나라로서는 천군만마를 얻은 격이 될 것이라고 했다. 성공과 실패는 되풀이 되는 것이며 실패를 연속하더라도 한 번의 성공으로 이전의 실패를 만회할 수도 있다는 것을 지적한다. 관중이나 조말의 경우가 그랬다. 그들이 실패했을 때 작은 의를 위해 급하게 삶을 결단냈다면 이후의 커다란 공적을 세울 수 없었을 것이다. 노중련의 서신을 받은 악의는 고민을 하였다. 사마천은 악의가 사흘을 울다 결국 자결했다고 전한다. 그러나 악의열전에서는 조나라로 투항하였다고 밝혔다. 유향의 <전국책>에서는 악의가 정중히 노중련의 말을 따르고 파병도독(罷兵到讀: 군대를 풀고 전통을 거꾸로 함)한 채 물러섰다고 기술되어 있다. 노중련은 공을 세우고 그를 치하하려는 왕의 뜻을 겸허히 사양했다. 보상을 받는 것은 장사꾼이 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분류:제나라 분류:연나라 분류:용성 분류: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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