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tract
| - 목만치 또는 목례만치(木刕滿致)는 명성이 삼한에 널리 알려져 있었던 목라근자 대장군의 아들이였다. 한국에서의 이름은 목례만치, 일본에서는 소가노마치라고 불리웠다. 목만치는 목라근자와 신라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임나의 권력자였다. 목라근자가 전쟁 중에 이쁜 신라여인을 만나서 낳은 아들이 목례만치로 후일 일본열도의 권력을 장악한 소가씨다. 서기 475년 9월 고구려 장수왕이 백제 수도 한성(워례성)을 공격으로 개로왕이 죽고 개로왕의 아들 문주와 목례만치는 왕도를 남쪽 웅진(지금의 공주) 로 읆긴다. 문주는 새로이 백제의 국왕에 즉위한 후 장군 목례만치와 조미걸취 등의 호위를 받으며 남쪽의 공주로 내려와 새로운 왕도를 건설하였다. 상황이 매우 시급하게 되었으니, 백제 호족이었던 목례만치가 일본으로 넘어가 성을 소가씨로 고치고 사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목만치가 왜로 건너가 소아만치로 거듭나는 과정에 당연하다는 듯이 걸림돌이 된 사랑하는 정인을 죽여주시고 목만치는 가슴에 한을 남기고 백제 땅을 떠난다. 7세기 왜국 최강호족인 소아씨(蘇莪氏)의 조상에 비정되는 목만치, 소아씨의 핵심계보만 정리해보면, 소아만지(滿智) - 한자(韓子) - 고려(高麗) - 도목(稻目) - 마자(馬子) - 하이(蝦夷) - 입록(入鹿) 이다. 천황을 4명이나 갈아 치우고, 살해까지 했던 고대 일본 최대의 호족 소아씨의 선조는 소아만지(蘇我満智)라는 사람인데, 이 인물이 한성백제 멸망 후, 문주왕을 모시고 웅진으로 천도하는데 기여한 목협만치(木劦滿致)라는 것은 한.일 사학자들의 일치된 의견이다. 그가 바로 일본 고대사에서 빼 놓을수 없는,130여년간 일본 정치를 주무른 소가(蘇我)씨 가문의 시작인 "소가만치"(蘇我滿智)이다. '소가'씨의 조상이 백제에서 건너온 도래계였고, 그들의 조상의 이름중에 '소가노 마치(蘇我滿智)', 즉 '소아만지'라는 인물이 나오기 때문인데, 이 '소가노 마치'를 '목협만치'라는 인물과 동일인이라는 설이 한국에선 강하게 제기된다. 분류:목라씨 분류:팔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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