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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극성(大棘城)은 선비족 모용씨의 근거지였다. 치우씨(蚩尤氏)는 창힐, 고신과 더불어 치우(蚩尤)의 후예(後裔)이다. 대극성(大棘城)에 태어나 이리저리 옮겨다니다가 산동(山東)의 회북(淮北)으로 옮겨 살았다.대요는 일찍이 치우천 왕으로부터 간지(干支)의 이치를 배웠다. 창힐은 치우 천왕으로부터 부도(符圖)의 이치를 배웠다. 대저 치우 천왕의 영풍위열함이 먼 나라의 깊숙한 곳에 이르기까지 전파되었음을 이로써 미루어 알 수 있다. 요동의 공손씨가 멸망한 후, 조조의 위나라는 막호발을 솔의왕(率義王)에 임명하고, 막호발은 대극성(大棘城)의 북쪽에 자리잡는다. 막호발이 죽은 후, 아들인 목연(木延), 손자인 섭귀(涉歸)가 대대로 다스렸다. 북사(北史)에 따르면 서진 영가지란(307-312)중에 선비 모용외가 창려 대극성(요령성 금주 북쪽)를 점거하자 후한 원제가 그를 평주 자사로 삼았는데, 이 당시에 고구려의 을불리(미천왕)가 자주 요동을 침범하였다. 고구려 장수여노가 지키고 있던 하성이 어디인지 불분명하지만 그를 사로잡아 창려 대극성으로 돌아간 것을 보면 대극성에서 아주 먼 곳은 아닐 것이다. 분류:연나라의 수도 분류:전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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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 - 대극성(大棘城)은 선비족 모용씨의 근거지였다. 치우씨(蚩尤氏)는 창힐, 고신과 더불어 치우(蚩尤)의 후예(後裔)이다. 대극성(大棘城)에 태어나 이리저리 옮겨다니다가 산동(山東)의 회북(淮北)으로 옮겨 살았다.대요는 일찍이 치우천 왕으로부터 간지(干支)의 이치를 배웠다. 창힐은 치우 천왕으로부터 부도(符圖)의 이치를 배웠다. 대저 치우 천왕의 영풍위열함이 먼 나라의 깊숙한 곳에 이르기까지 전파되었음을 이로써 미루어 알 수 있다. 요동의 공손씨가 멸망한 후, 조조의 위나라는 막호발을 솔의왕(率義王)에 임명하고, 막호발은 대극성(大棘城)의 북쪽에 자리잡는다. 막호발이 죽은 후, 아들인 목연(木延), 손자인 섭귀(涉歸)가 대대로 다스렸다. 금주시 서쪽인 대집둔(台集屯) 서가구(徐家溝)로 비정된다. 중국에서 현재 요서군 도하, 대극성 등으로 보는 곳인데 이는 틀린 것이고 전한의 도하, 대극성은 앞에 애기한 홍애자 고성이다. 대신에 이곳은 황수(黃水) 위에 있던 험독성이다. 요동 속국이었다가 전연국의 모용외에게 들어갔다. 그 배후인 비려 지역, 노합하 상류 지역을 먼저 복속한 것이다. 모용외(慕容廆)는 도하(徒河), 청산(靑山) 아래 대극성을 건설하여 전연의 최초 수도로 두었다. 북사(北史)에 따르면 서진 영가지란(307-312)중에 선비 모용외가 창려 대극성(요령성 금주 북쪽)를 점거하자 후한 원제가 그를 평주 자사로 삼았는데, 이 당시에 고구려의 을불리(미천왕)가 자주 요동을 침범하였다. 고구려 장수여노가 지키고 있던 하성이 어디인지 불분명하지만 그를 사로잡아 창려 대극성으로 돌아간 것을 보면 대극성에서 아주 먼 곳은 아닐 것이다. 분류:연나라의 수도 분류:전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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