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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배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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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배압(蕭排押, ? ~ ?)은 거란족 출신의 요나라 장군이다. 요 경종(景宗)의 사위이자 소손녕(蕭遜寧)의 형인 소배압은 서북 방면의 몽골족 정벌에 공을 세웠다. 요나라 경종(景宗)의 사위인 소배압은 서북 방면의 몽골족 정벌에 공이 있었고, 986년(거란 성종4)에는 하북(河北) 으로 진격해온 송군을 격파하였다. 서희에게 강동6주를 주고 거란으로 돌아온 소배압은 거란황제 성종에게 직접맞는 영광을 누리고 감옥에 갇혔다. 1018년 12월에 거란은 소배압(簫排押)의 지휘로 10만의 군대를 보내어 침입해왔다. 강감찬은 공격명령을 내려 수많은 적을 무찔렀다. 이렇게 하여 첫 싸움은 고려군이 대승을 거뒀다. 그러자 소배압은 흥화진을 우회해 개경으로 바로 남진했다. 싸움을 벌였으나 추위에 지치고 굶주린지라 마구 쓰러졌다. 1만여 명의 군사를 잃은 소배압은 그래도 큰소리쳤다.“개경이 가까워졌다! 가서 고려 왕만 사로잡으면 이긴다!” 청나라 고지도에서 보듯이 안주의 남쪽에는 작은 지류가 있고 그 지류의 양쪽에 산이 있다. 그러니 소배압은 후퇴하면서 두 산이의 지류를 통과할수 밖에 없엇던 것이고 그 지류는 상류에서 막기에 쉬웠던 것이다. 분류:요나라 사람
  • 소배압(蕭排押, ? ~ ?)은 거란족 출신의 요나라 장군이다. 요 경종(景宗)의 사위이자 소손녕(蕭遜寧)의 형인 소배압은 서북 방면의 몽골족 정벌에 공을 세웠다. 요나라 경종(景宗)의 사위인 소배압은 서북 방면의 몽골족 정벌에 공이 있었고, 986년(거란 성종4)에는 하북(河北) 으로 진격해 온 송군을 격파하였다. 서희에게 강동 6주를 주고 거란으로 돌아온 소배압은 거란 황제 성종에게 직접맞는 영광을 누리고 감옥에 갇혔다. 1018년 12월에 거란은 소배압(簫排押)의 지휘로 10만의 군대를 보내어 침입해왔다. 강감찬은 공격 명령을 내려 수많은 적을 무찔렀다. 이렇게 하여 첫 싸움은 고려군이 대승을 거뒀다. 그러자 소배압은 흥화진을 우회해 개경으로 바로 남진했다. 싸움을 벌였으나 추위에 지치고 굶주린지라 마구 쓰러졌다. 1만여 명의 군사를 잃은 소배압은 그래도 큰소리쳤다.“개경이 가까워졌다! 가서 고려 왕만 사로잡으면 이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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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배압(蕭排押, ? ~ ?)은 거란족 출신의 요나라 장군이다. 요 경종(景宗)의 사위이자 소손녕(蕭遜寧)의 형인 소배압은 서북 방면의 몽골족 정벌에 공을 세웠다. 요나라 경종(景宗)의 사위인 소배압은 서북 방면의 몽골족 정벌에 공이 있었고, 986년(거란 성종4)에는 하북(河北) 으로 진격해온 송군을 격파하였다. 서희에게 강동6주를 주고 거란으로 돌아온 소배압은 거란황제 성종에게 직접맞는 영광을 누리고 감옥에 갇혔다. 1018년 12월에 거란은 소배압(簫排押)의 지휘로 10만의 군대를 보내어 침입해왔다. 강감찬은 공격명령을 내려 수많은 적을 무찔렀다. 이렇게 하여 첫 싸움은 고려군이 대승을 거뒀다. 그러자 소배압은 흥화진을 우회해 개경으로 바로 남진했다. 싸움을 벌였으나 추위에 지치고 굶주린지라 마구 쓰러졌다. 1만여 명의 군사를 잃은 소배압은 그래도 큰소리쳤다.“개경이 가까워졌다! 가서 고려 왕만 사로잡으면 이긴다!” 청나라 고지도에서 보듯이 안주의 남쪽에는 작은 지류가 있고 그 지류의 양쪽에 산이 있다. 그러니 소배압은 후퇴하면서 두 산이의 지류를 통과할수 밖에 없엇던 것이고 그 지류는 상류에서 막기에 쉬웠던 것이다. 분류:요나라 사람
  • 소배압(蕭排押, ? ~ ?)은 거란족 출신의 요나라 장군이다. 요 경종(景宗)의 사위이자 소손녕(蕭遜寧)의 형인 소배압은 서북 방면의 몽골족 정벌에 공을 세웠다. 요나라 경종(景宗)의 사위인 소배압은 서북 방면의 몽골족 정벌에 공이 있었고, 986년(거란 성종4)에는 하북(河北) 으로 진격해 온 송군을 격파하였다. 서희에게 강동 6주를 주고 거란으로 돌아온 소배압은 거란 황제 성종에게 직접맞는 영광을 누리고 감옥에 갇혔다. 1018년 12월에 거란은 소배압(簫排押)의 지휘로 10만의 군대를 보내어 침입해왔다. 강감찬은 공격 명령을 내려 수많은 적을 무찔렀다. 이렇게 하여 첫 싸움은 고려군이 대승을 거뒀다. 그러자 소배압은 흥화진을 우회해 개경으로 바로 남진했다. 싸움을 벌였으나 추위에 지치고 굶주린지라 마구 쓰러졌다. 1만여 명의 군사를 잃은 소배압은 그래도 큰소리쳤다.“개경이 가까워졌다! 가서 고려 왕만 사로잡으면 이긴다!” 청나라 고지도에서는 안주의 남쪽에는 작은 지류가 있고 그 지류의 양쪽에 산이 있다. 그러니 소배압은 후퇴하면서 두 산이의 지류를 통과할수 밖에 없엇던 것이고 그 지류는 상류에서 막기에 쉬웠던 것이다. 분류:요나라 사람 분류:고요전 분류:귀주 대첩 분류:업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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