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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자랑(國子郞)은 신교를 배우고 실천하기 위해 뽑은 젊은이들로서 조선 신교의 낭가 정신에서 시작된 것이다. 이 낭가 제도는 배달국의 국자랑에서 시작되어 단군조선의 국자랑, 북부여의 천왕랑, 고구려의 조의선인, 백제의 무절, 신라의 화랑, 고려의 선랑, 국선, 재가화상으로 이어졌다. 최초의 낭도는 환웅 천황이 거느리고 온 3000의 문명 개척단이었다. 신시 배달이래 나라를 이끌어가는 지도자와 관료, 제사장 등을 길러내기 위해 교육하였다. 단군조선(檀君朝鮮)을 세운 1대 단군 왕검(王儉)에 이르러 선풍(仙風)으로 유행하였다고 한다. 국자랑, 천지화랑 등을 뽑아 단학을 가르쳤다. 이들의 우두머리를 천지화랑(天指花郞)이라고 불렀다. 단군 시대에는 이 수두를 많이 설치하여 천지화(天指花)를 심었고, 이곳에서 공부하는 학인(學人)을 국자랑(國子郞)이라고 하였는데, 국자랑이 나와 다닐 때는 머리에 천지화를 꽂았기 때문에 사람들은 국자랑을 일컬어 천지화랑(天指花郞)이라고 불렀다. 국자랑이란 크게는 우주와 자연에 대한 공부요, 작게는 인체에 대한 탐구와 인간본연의 모습을 살피고자 함이다. 또한 심신단련의 선도수련법이며 우리민족 고유의 무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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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 - 국자랑(國子郞)은 신교를 배우고 실천하기 위해 뽑은 젊은이들로서 조선 신교의 낭가 정신에서 시작된 것이다. 이 낭가 제도는 배달국의 국자랑에서 시작되어 단군조선의 국자랑, 북부여의 천왕랑, 고구려의 조의선인, 백제의 무절, 신라의 화랑, 고려의 선랑, 국선, 재가화상으로 이어졌다. 최초의 낭도는 환웅 천황이 거느리고 온 3000의 문명 개척단이었다. 신시 배달이래 나라를 이끌어가는 지도자와 관료, 제사장 등을 길러내기 위해 교육하였다. 단군조선(檀君朝鮮)을 세운 1대 단군 왕검(王儉)에 이르러 선풍(仙風)으로 유행하였다고 한다. 국자랑, 천지화랑 등을 뽑아 단학을 가르쳤다. 이들의 우두머리를 천지화랑(天指花郞)이라고 불렀다. 단군 시대에는 이 수두를 많이 설치하여 천지화(天指花)를 심었고, 이곳에서 공부하는 학인(學人)을 국자랑(國子郞)이라고 하였는데, 국자랑이 나와 다닐 때는 머리에 천지화를 꽂았기 때문에 사람들은 국자랑을 일컬어 천지화랑(天指花郞)이라고 불렀다. 11세 단군 도해 때를 보면, '명산의 가장 뛰어난 곳을 찾아 국선의 소도를 설치케 하셨다'고 했다. 미혼의 자제, 즉 청소년으로 하여금 글을 읽고 활쏘기를 익히게 하며, 이들을 국자랑(國子郞)이라 부르게 하였다. 국자랑은 돌아다닐 때 머리에 천지화를 꽂았다. 국자랑이란 크게는 우주와 자연에 대한 공부요, 작게는 인체에 대한 탐구와 인간본연의 모습을 살피고자 함이다. 또한 심신단련의 선도수련법이며 우리민족 고유의 무술이다. 단군조선의 국자랑(國子郞) 혹은 천지화랑제도가 고구려에 와서는 조의선인 제도로, 백제에서는 무절(武節-일본의 사무라이(武士)로 이어짐)로 발전했으며, 신라에서는 화랑도로 이름이 바뀐 것이다. 고구려의 조의선인 제도는 그대로 신라에 전해져 국선화랑(國仙花郞)이 되었다. 화랑의 화랑오계, 세속오계는 국자랑의 오상지도와 이름만 다를 뿐 단군조선시대부터 이어져 온 우리 선인들의 가르침과 같은 것이다. 분류:고조선 분류:교육 기관 분류:화랑 분류:제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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