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tract
| - 로마노프 왕조 [Romanov dynasty]는 1613년부터 1917년 2월 혁명 전까지 러시아를 다스린 왕조이다. 러시아에 있었던 한 왕조, 1613년 미하일 로마노프의 즉위로부터 시작되어 1917년 러시아 혁명으로 니콜라이 2세가 퇴위함으로써 붕괴되었다. 황후와 네 딸 그리고 짜르가 금쪽같이 여기던 황태자, 전의, 시종들 모두에게 총탄 세례가 가해졌다. 로마노프 왕조의 종말은 참혹했다. 모스크바 대공 이반 1세 칼리타(1328~41 재위) 치하에서 살았던 모스크바 보야르(대귀족) 안드레이 이바노비치 코빌라(캄빌라라고도 함)의 자손들로, 로마노프라는 성은 로만 유레프(1543 죽음)에게서 따온 것이다. 유레프의 딸 아나스타시야 로마노브나 자하리나-유레바는 뇌제(雷帝) 이반 4세(1547~84 차르)의 첫번째 왕비였는데 그녀의 오빠인 니키타의 자식들이 왕비의 아버지인 조부를 기리기 위해 로마노프라는 성을 쓰기 시작했다. 1598년 표도르 1세(류리크 왕조 최후의 왕)가 죽자 러시아에는 15년간의 암흑기인 이른바 혼란시대(1598~1613)가 도래했다. 1600년대 폴란드군은 러시아의 민족적인 항쟁으로 항복하고 미하일 로마노프를 선출해 로마노프 왕조가 시작된다. 속담에서 볼수 있듯이 러시아에서의 황제란 신과같은 존재였다. 1613년, 로마노프 왕조의 첫 황제로 뽑힌 미하일 로마노프도 마찬가지였다. 전국회의인 '젬스키 소보르 '에서 니키타의 손자 미하일 로마노프를 새 차르로 선출함으로써 혼란시대를 종식시켰다. 1797년까지 로마노프 왕조에는 정해진 왕위 계승 원칙이 없었다. 왕조가 시작된 지 1세기가 흐를 때까지 일반적으로 차르의 큰아들에게, 만약 아들이 없는 경우 가장 가까운 남자 친척 중 연장자에게 제위를 물려주는 관습(류리크 왕조에서 내려온 관습이었음)을 따랐다. 이에 따라 미하일(1613~45 재위)의 뒤를 이어 아들 알렉세이(1645~76 재위)가 즉위했고, 다시 알렉세이의 아들이 표도르 3세(1676~82 재위)로 자리를 이었다. 그러나 표도르가 죽은 뒤에 그의 동생 이반과 이복동생 표트르가 제위를 두고 경합을 벌였다. 젬스키 소보르는 표트르를 새 황제로 선출했지만 황실친위병인 '스트렐치 '의 지지를 받은 이반의 가족이 궁정 반란을 일으켜 이반 5세와 표트르 1세가 나란히 제위에 올랐다(1682). 뒤에 단독 통치자가 된(1696) 표트르(황제란 칭호를 쓴 최초의 차르)는 통치자가 후계자 선택권을 갖는 내용의 왕위 계승법을 제정했다(1722. 2. 16[구력 2. 5]). 그러나 표트르 자신은 그 법령을 이용하지 못했고 18세기 내내 제위 계승문제는 여전히 결말이 나지 않았다. 표트르는 제위를 부인인 예카테리나 1세에게 물려주었는데 그녀는 단지 결혼에 의해 로마노프 일가가 된 사람이었다. 그러나 예카테리나 1세가 사망하자 제위는 표트르 1세의 손자인 표트르 2세에게로 돌아갔다. 그리고 그가 죽자(1730) 이반 5세의 둘째딸 안나가 여제(女帝)로 등극했다. 안나가 죽자(1740) 그 언니의 딸인 안나 레오폴도브나가 자신의 아들 이반 6세의 섭정을 맡았다. 그녀의 부친은 매클렌부르크가(家) 출신이었고 아들의 부계(父系)는 브라운슈바이크-볼펜뷔텔 가로 연결되었다. 그러나 이반 6세는 1741년 표트르 1세와 예카테리나 1세 사이에서 태어난 옐리자베타에게 제위를 양보해야 했다. 옐리자베타의 등극과 함께 로마노프 왕가의 남자 계보는 1762년에 끊어졌다. 그러나 로마노프란 이름은 옐리자베타의 조카로 제위에 오른 표트르 3세를 배출한 홀슈타인-고토르프가의 일파에 의해 유지되었다. 1762~96년은 독일 안할트-체르프스트가 출신으로 표트르 3세의 미망인인 예카테리나 2세가 통치했다. 그뒤 표트르 3세의 아들이 파벨 1세가 됨으로써 홀슈타인-고토르프계의 로마노프가가 다시 황제자리를 차지했다. 1797년 4월 5일(구력), 파벨 1세는 계승법을 바꾸어 로마노프 일가를 위한 정확한 계승 순위를 설정했다. 그는 아들 알렉산드르 1세(1801~25 재위)를 지지하는 반란군에 의해 살해되었으며 알렉산드르가 사망하자 계승 순서는 또다시 뒤바뀌었다. 적법한 후계자인 알렉산드르의 동생 콘스탄틴이 다른 동생 니콜라이 1세를 위해 비밀리에 제위를 거절했기 때문이었다. 니콜라이는 1825~55년 다스렸는데 그후의 계승은 파벨이 정한 법에 따라 알렉산드르 2세(1855~81), 알렉산드르 3세(1881~94), 니콜라이 2세(1894~1917)의 순으로 이어졌다. 1917년 3월 15일(구력 3. 2), 니콜라이 2세는 동생 미하일에게 양위했으나 다음날 미하일은 왕위를 거부했다. 니콜라이와 그의 직계 가족은 1918년 7월 예카테린부르크에서 처형되었다. 나머지 로마노프 일가도 국외로 도피하거나 처형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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