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저강(婆猪江)이 동가강이라고도 한다하고 혼동강이 혼하라고도 칭한다. 여진족 부족에 보내 진위를 염탐하게 하였다. 이 결과 파저강 일대에 거주하던 이만주의 여진족이 주범인 것으로 확신하게 되었다. 세종은 결국 파저강 유역을 토벌하기 위해 군대 3천 명을 동원할 결심을 하고 의정부와 육조, 국방을맡은 관리들을 모두 불러들여 의논했다. 세종 15년(1433) 4월 압록강을 넘어 파저강에서 야인을 토벌하였다. 4월 20일 조선군의 압승으로 끝났다. 파저강 전투는 압록강 너머로 조선인의 활동 무대를 넓혔다는데 큰 의의가 있다. 파저강 전투 는 조선 세종 시기 1433년 최윤덕 등 북방 장수들이 오랫동안 조선 을 괴롭히던 여진족 들을 정벌하기 위해 여진족들의 근거지 파저강 유역을 소탕한 전투이다. 분류:조선 분류:사군
파저강(婆猪江)이 동가강이라고도 한다하고 혼동강이 혼하라고도 칭한다. 여진족 부족에 보내 진위를 염탐하게 하였다. 이 결과 파저강 일대에 거주하던 이만주의 여진족이 주범인 것으로 확신하게 되었다. 세종은 결국 파저강 유역을 토벌하기 위해 군대 3천 명을 동원할 결심을 하고 의정부와 육조, 국방을맡은 관리들을 모두 불러들여 의논했다. 세종 15년(1433) 4월 압록강을 넘어 파저강에서 야인을 토벌하였다. 4월 20일 조선군의 압승으로 끝났다. 파저강 전투는 압록강 너머로 조선인의 활동 무대를 넓혔다는데 큰 의의가 있다. 파저강 전투 는 조선 세종 시기 1433년 최윤덕 등 북방 장수들이 오랫동안 조선 을 괴롭히던 여진족 들을 정벌하기 위해 여진족들의 근거지 파저강 유역을 소탕한 전투이다. 분류:조선 분류:사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