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tract
| - 근강국은 고대 일본의 소국이였다. 신라인이 끊임없이 일본의 각 지역 즉 하모야국(下毛野國)·무장국(武藏國)·미농국(美濃國)·근강국(近江國)·준하국(駿河國) 등에 이주하여 신라인 사회를 형성하여 신라인의 성(姓)을 갖고 생활을 하였음을 알 수 있다. 천조 대신(天照大神)을 왜희명(倭姬命)에게 맡겼다. 왜희명(倭姬命)은 대신(大神)을 모실 자리를 찾아 다니다가 근강국(近江國)으로 가서 미농국(美濃國)을 돌아 이세국(伊勢國)에 이르렀다. 천일창(天日槍)이 도도하(菟道河)에서 이를 거슬러 올라 북(北)으로 근강국(近江國) 오명읍(吾名邑)에 들어 잠깐 살고, 다시 고쳐 근강(近江)에서 약협국(若狹國)을 지나 서(西)로 단마국에 정착하였다. 근강국 경촌곡(鏡村谷) 도인(陶人)은 바로 천일창을 따라온 사람이었다. 근강국 골짜기의 도인들은 천일창을 따라온 사람들이다. 665년 2월, 부여 용은 남부여의 건축 기술자 400명을 근강국(近江國)의 포생군(蒲生郡)으로 보내 새 나라 일본(日本)의 이름에 어울리는 새 서울을 짓도록 하엿다. 669년 백제 유민700여 명과 함께 근강국近江國(사가 현) 우라오군蒲生郡으로 옮겨 가서살았다. 일본에서 처음으로 유통되어진 화폐가 주조되어진 것은, 겐메이 천황(元明天皇) 화동원년(和銅元年 ,708) 이고, 『일본서기』는 기옥현 질부시에서 자연동(自然銅)이 받쳐지게 되면서 「화동개원(和銅改元)의 詔」가 나타난것을 기록하고 있다. 동년( 同年) 2월 21일, 화동전 주조를 위해 영외(令外)의 司 「崔鑄錢司」를 설치, 5월 21일 은전(銀錢), 7월 26일 근강국에서 동전을 주조하고, 8월 10일 이 화동전을 발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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