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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상안은 후진의 수도였다. 마목으로 도망친 요장은 384년에 천수(天水) 지역 윤씨(尹氏)들의 협력으로 맹주가 되어 대장군-대선우-만년진왕(大將軍大單牛萬年秦王)을 칭하고 백작(白雀)으로 연호를 정했다. 후진이 성립되었을때 관중은 전진과 서연이 치열한 다툼을 벌이고 있었고, 그보다 세력이 약한 후진의 요장은 서연에게 인질을 보내 복종을 맹세했다. 385년 서연은 전진의 수도 장안(長安)을 함락하고 전진의 주력을 거의 전멸시켰다. 요장은 장안 이북의 각지역을 차례로 점령하고 같은 해 장안에서 도망쳤던 부견을 살해했다. 386년, 장안을 점령했던 서연은 내란이 발생해 40만 명의 백성을 데리고 병주로 돌아갔다. 이에 장안 일대의 관중 지역은 공백상태가 되었고, 요장은 힘들이지 않고 장안을 점령했다. 요장은 장안을 상안(常安)이라 고치고, 이곳을 수도로 삼아 황제에 즉위했다. 같은해 전진의 잔존 세력도 포한(?罕)에서 즉위한 부등(?登)에 의해 통합되었다. 부등은 동쪽으로 전진해 관중 각지에 있던 전진의 잔존세력을 규합해 후진을 포위했다. 후진은 각지에서 전진군에게 패해 387년에는 안정과 상안의 2도시만 남았을 정도로 쇠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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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상안은 후진의 수도였다. 마목으로 도망친 요장은 384년에 천수(天水) 지역 윤씨(尹氏)들의 협력으로 맹주가 되어 대장군-대선우-만년진왕(大將軍大單牛萬年秦王)을 칭하고 백작(白雀)으로 연호를 정했다. 후진이 성립되었을때 관중은 전진과 서연이 치열한 다툼을 벌이고 있었고, 그보다 세력이 약한 후진의 요장은 서연에게 인질을 보내 복종을 맹세했다. 385년 서연은 전진의 수도 장안(長安)을 함락하고 전진의 주력을 거의 전멸시켰다. 요장은 장안 이북의 각지역을 차례로 점령하고 같은 해 장안에서 도망쳤던 부견을 살해했다. 386년, 장안을 점령했던 서연은 내란이 발생해 40만 명의 백성을 데리고 병주로 돌아갔다. 이에 장안 일대의 관중 지역은 공백상태가 되었고, 요장은 힘들이지 않고 장안을 점령했다. 요장은 장안을 상안(常安)이라 고치고, 이곳을 수도로 삼아 황제에 즉위했다. 같은해 전진의 잔존 세력도 포한(?罕)에서 즉위한 부등(?登)에 의해 통합되었다. 부등은 동쪽으로 전진해 관중 각지에 있던 전진의 잔존세력을 규합해 후진을 포위했다. 후진은 각지에서 전진군에게 패해 387년에는 안정과 상안의 2도시만 남았을 정도로 쇠퇴했다. 389년 후진은 대계(大界)에서 전진군의 주력을 크게 격파하여 관중 각지에서 전진에 대해 우세를 확보했다. 부등도 교묘한 외교술로 후진 포위망을 유지하여 대치 상태는 계속되었다. 393년 말 요장이 병사하자 394년 부등은 남은 병력을 모두 모아서 후진을 공격하였으나 요장의 후계자 요흥(姚興)은 폐교(?橋)에서 이를 격파했다. 뒤이어 마모산에서 부등을 살해하고 관중을 통일하였다. 417 년 요소가 진중에서 사망하자, 이제 더이상 후진을 지탱할 인물은 없었고, 동진은 동관을 함락하고 후진의 방어선을 차례로 돌파하여 상안을 함락했다 . 요홍은 사로잡혀 건강으로 보내진 후 참수됐고 , 이로써 후진은 3 대 34 년 만에 멸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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