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수(淮水) 또는 회하(淮河)는 귤이 탱자로 변하는 경계에 있었던 강이다. 회수(淮水)가 동백산(桐栢山)에서 흘러내려 동쪽으로 천리나 흘러서 그치지 않았고, 비수(淝水)가 그 옆에서 흘러 천리는 흐르지 못하고 백리만에 회수에 합류한다. 은나라 무을(武乙 27대) 때에 동이가 차츰차츰 번성하여 드디어 나뉘어서 회대(淮岱 회수(淮水)와 대산(岱山 : 태산일대)로 옮겨 와 점점 중국에 살게 되었는데, 이른바 서이(徐夷)가 이것이다. 변한왕 기자(箕子)는 본래 진한의 영토이었던 회수(淮水)와 대산(垈山)사이의 땅으로 변한의 백성을 옮겨서 다스렸다. 처음 기자(箕子)는 평양에 도읍하였다. 진시황을 피하여 달아난 서복(徐福, 徐市, 서불)은 회수(淮水)와 사수(泗水) 출신이라 한다. 338년에 동진은 회수(淮水) 이남을 장악하고 있었고 회수 이북에는 후조(后?)가 자리를 굳건하게 지키고 있던 시점이다. 송나라와 금나라 양국은 동쪽으로는 회수(淮水)를 경계로 하고, 서쪽으로는 대산관(大散關)을 경계로 상대적으로 안정된 대치국면을 형성하였다.
회수(淮水) 또는 회하(淮河)는 귤이 탱자로 변하는 경계에 있었던 강이다. 회수(淮水)가 동백산(桐栢山)에서 흘러내려 동쪽으로 천리나 흘러서 그치지 않았고, 비수(淝水)가 그 옆에서 흘러 천리는 흐르지 못하고 백리만에 회수에 합류한다. 은나라 무을(武乙 27대) 때에 동이가 차츰차츰 번성하여 드디어 나뉘어서 회대(淮岱 회수(淮水)와 대산(岱山 : 태산일대)로 옮겨 와 점점 중국에 살게 되었는데, 이른바 서이(徐夷)가 이것이다. 변한왕 기자(箕子)는 본래 진한의 영토이었던 회수(淮水)와 대산(垈山)사이의 땅으로 변한의 백성을 옮겨서 다스렸다. 처음 기자(箕子)는 평양에 도읍하였다. 진시황을 피하여 달아난 서복(徐福, 徐市, 서불)은 회수(淮水)와 사수(泗水) 출신이라 한다. 338년에 동진은 회수(淮水) 이남을 장악하고 있었고 회수 이북에는 후조(后?)가 자리를 굳건하게 지키고 있던 시점이다. 송나라와 금나라 양국은 동쪽으로는 회수(淮水)를 경계로 하고, 서쪽으로는 대산관(大散關)을 경계로 상대적으로 안정된 대치국면을 형성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