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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루국(虞婁國,Ur)은 일명 필나국(畢那國,Pella)이라 하여 은나라의 서쪽이라고도 추정되나 수메르지역의 우루국이 될 가능성이 있다. 우루라는 말에서 서쪽에 있는 나라가 되며, 한국의 서쪽에 해당하는 나라는 바로 월식주에 있는 나라로서, 바로 수메르지역에 있던 우루국의 전신으로 추정된다. 우루국 사람들을 염수 근처에 정착하도록 하였다 하는데, 염수는 여러곳이 있어서 특정할 수없으나, 평양에서 발굴된 연와에 새겨진 히브리 문자로 보아 후대에 이 우루국 사람들이 계속 동쪽으로 이동하여 평양까지 오지 않았나 추정된다. 기원전 1652년경 우루국 20가가 단군조선에 투항하였다라는 기록이 있는데, 이는 기원전2,000년경에서 기원전1,800년경 바빌론의 함무라비 왕이 수메르 지역을 차지하면서 셈족의 일파인 우르국 사람들이 종주국의 땅이 되는 동쪽으로 이동하여 단군 조선에 망명하게 되는 것이다. 우루국은 호태제성릉비의 주루이니 흑수 곡 내몽고 지방에 그 후예들이 살고 있다. 벽산이덕수의 국사반정론에서는 주로는 곧 해랄이라 하였고 근파 박노철은 우루는 곧 피랄하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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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 - 우루국(虞婁國,Ur)은 일명 필나국(畢那國,Pella)이라 하여 은나라의 서쪽이라고도 추정되나 수메르지역의 우루국이 될 가능성이 있다. 우루라는 말에서 서쪽에 있는 나라가 되며, 한국의 서쪽에 해당하는 나라는 바로 월식주에 있는 나라로서, 바로 수메르지역에 있던 우루국의 전신으로 추정된다. 우루국 사람들을 염수 근처에 정착하도록 하였다 하는데, 염수는 여러곳이 있어서 특정할 수없으나, 평양에서 발굴된 연와에 새겨진 히브리 문자로 보아 후대에 이 우루국 사람들이 계속 동쪽으로 이동하여 평양까지 오지 않았나 추정된다. 기원전 1652년경 우루국 20가가 단군조선에 투항하였다라는 기록이 있는데, 이는 기원전2,000년경에서 기원전1,800년경 바빌론의 함무라비 왕이 수메르 지역을 차지하면서 셈족의 일파인 우르국 사람들이 종주국의 땅이 되는 동쪽으로 이동하여 단군 조선에 망명하게 되는 것이다.
* 20가(家)는 대략 3,000명 정도 될 것이다. 1가는 1가장(家長)의 씨족 집단이 되는데, 4대가 함께 산다고 보면 10명의 자식을 두었다고 계산하여 합하면 대략 150명이 되고, 20가는 대략 3,000명 정도가 된다.
* 3,000명 정도의 무리이면 읍단위보다 더 많은 무리가 될 것이다. 기록으로 보면 10가(家)를 읍이라 하는데, 적어도 1,500명은 된다고 본다. 읍의 장을 읍차라 한다. 기자의 먼후손 기후는 읍차로서 번조선왕이 된 사람이다. 우루국을 필나국이라고도 하는데, 주무왕의 고향이 필영이라 하는 바, 필나는 서방을 가리키며, 우루국이 기원전 1652년경 이미 정착하여 단군 조선의 서방에 자리잡았고, 이후 주무왕이 기원전 1122년 은나라를 멸하고 주나라를 건국하면서 우루국이 서쪽이라는 의미로 필나국으로 불리어지고 이 우루국이 필나국이라 불린 것으로 추정되기도 한다. 우루국은 호태제성릉비의 주루이니 흑수 곡 내몽고 지방에 그 후예들이 살고 있다. 벽산이덕수의 국사반정론에서는 주로는 곧 해랄이라 하였고 근파 박노철은 우루는 곧 피랄하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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