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손도(公孫度, ? ~ 204년)은 중국 후한 말의 인물로, 자는 승제(升濟)이며 유주(幽州) 요동군(遼東郡) 양평현(襄平縣) 사람이다. 어릴 적 이름은 공손표(公孫豹)였다. 공손도의 부친 공손연은 어떤 사건으로 관리의 추적을 피해서 현도군에서 살았고, 공손도는 군의 낮은 벼슬아치로 임명되었다. 대방군을 설치한 공손강 가문은 그 부친 공손도(公孫度)가 후한 말의 혼란기에 요동왕을 자칭했던 가문이다. 공손도는 원래 현도(玄度)의 낮은 관리였다. 동향 사람인 서영(徐榮)이 동탁의 후원으로 요동태수가 되었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이런 벼락 출세에 대한 반발이 일자 공손도는 강경책을 썼다. 북사(北史) 에 따르면 백제의 시조 구태가 있었는데 매우 어질고 신실하였다. 귀화한 구태는 대장군이라는 막중한 권력의 선두에서게 되었다. 대방의 태수 공손도는 튼튼한 배후를 얻게 되어 기뻤다. 아무튼 그는 대방을 좌우지하는 막후 인물이 되었다. 처음에 대방 옛 땅에 나라를 세우니 한나라 요동 태수 공손도가 자기의 딸로써 구태의 아내를 삼게 하였다. 드디어 동이에서 강국으로 되었다. 처음에 백가(百家)가 (바다를)건넜다고 하여 백제라고 하였다.
공손도(公孫度, ? ~ 204년)은 중국 후한 말의 인물로, 자는 승제(升濟)이며 유주(幽州) 요동군(遼東郡) 양평현(襄平縣) 사람이다. 어릴 적 이름은 공손표(公孫豹)였다. 공손도의 부친 공손연은 어떤 사건으로 관리의 추적을 피해서 현도군에서 살았고, 공손도는 군의 낮은 벼슬아치로 임명되었다. 대방군을 설치한 공손강 가문은 그 부친 공손도(公孫度)가 후한 말의 혼란기에 요동왕을 자칭했던 가문이다. 공손도는 원래 현도(玄度)의 낮은 관리였다. 동향 사람인 서영(徐榮)이 동탁의 후원으로 요동태수가 되었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이런 벼락 출세에 대한 반발이 일자 공손도는 강경책을 썼다. 북사(北史) 에 따르면 백제의 시조 구태가 있었는데 매우 어질고 신실하였다. 귀화한 구태는 대장군이라는 막중한 권력의 선두에서게 되었다. 대방의 태수 공손도는 튼튼한 배후를 얻게 되어 기뻤다. 아무튼 그는 대방을 좌우지하는 막후 인물이 되었다. 처음에 대방 옛 땅에 나라를 세우니 한나라 요동 태수 공손도가 자기의 딸로써 구태의 아내를 삼게 하였다. 드디어 동이에서 강국으로 되었다. 처음에 백가(百家)가 (바다를)건넜다고 하여 백제라고 하였다. 요사 귀덕주 영원군은 본래 한나라 양평현이다. 한나라 때 공손도가 거처한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