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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옥구 읍성은 군산의 산성이다. 문종 원년(1451)에 우찬성 정분의 상계에 따라 옥구읍성이 신축되었다. 둘레 1,511척(457m), 높이 9척(2.72m)으로 지었는데 이를 중종 19년(1523)에 둘레 3,490척(1,057m), 높이 12척(3.63m)으로 더 크게 고쳐 지었다. 이후 「문헌비고」의 기록에 의하면 옥구읍성은 석축으로 둘레가 3,330척 (1,008m), 높이가 20척(6m), 옹성이 4개 등으로 기록된 것을 볼 때 도합 세 차례에 걸쳐 고쳐 지은 듯하다. 읍성은 행정적 기능과 군사적 기능을 함께 하는 특이한 형태이다. 옥구읍성의 경우는 전형적인 평산성(平山城)의 형태를 지니고 있다. 산성과 평지성의 절충형이라 할 수 있는 평산성의 형태는 기본적으로 부정형의 타원 또는 원형을 이루며 돌이나 흙으로 쌓는데 옥구읍성 또한 읍성의 기본형태를 따르고 있다. 옥구읍성과 같은 평산성은 우리나라의 지방고을이 배후에 산을 등지고 고을이 형성되기 때문에 마을 뒷산에서 시작한 산성이 마을을 감싸는 형태의 자연발생적 형태라 볼 수 있다. 그 예로 경상남도 통영읍성은 그 규모만 다를 뿐 옥구읍성의 모습과 거의 유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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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옥구 읍성은 군산의 산성이다. 문종 원년(1451)에 우찬성 정분의 상계에 따라 옥구읍성이 신축되었다. 둘레 1,511척(457m), 높이 9척(2.72m)으로 지었는데 이를 중종 19년(1523)에 둘레 3,490척(1,057m), 높이 12척(3.63m)으로 더 크게 고쳐 지었다. 이후 「문헌비고」의 기록에 의하면 옥구읍성은 석축으로 둘레가 3,330척 (1,008m), 높이가 20척(6m), 옹성이 4개 등으로 기록된 것을 볼 때 도합 세 차례에 걸쳐 고쳐 지은 듯하다. 읍성은 행정적 기능과 군사적 기능을 함께 하는 특이한 형태이다. 옥구읍성의 경우는 전형적인 평산성(平山城)의 형태를 지니고 있다. 산성과 평지성의 절충형이라 할 수 있는 평산성의 형태는 기본적으로 부정형의 타원 또는 원형을 이루며 돌이나 흙으로 쌓는데 옥구읍성 또한 읍성의 기본형태를 따르고 있다. 옥구읍성과 같은 평산성은 우리나라의 지방고을이 배후에 산을 등지고 고을이 형성되기 때문에 마을 뒷산에서 시작한 산성이 마을을 감싸는 형태의 자연발생적 형태라 볼 수 있다. 그 예로 경상남도 통영읍성은 그 규모만 다를 뿐 옥구읍성의 모습과 거의 유사하다. 평산성으로서 읍성의 기본형태를 따르는 옥구읍성은 옥구읍 상평리 광월산(86m)의 남록을 포함하고 평지의 관청과 민호를 포함한 형태로 북쪽의 광월산에서 동쪽과 서쪽으로 흘러내린 구릉을 따라 성을 쌓았는데 남쪽은 동서의 성벽이 현재 옥구선 철도의 철로 자리로 뻗어 철로와 상평초등학교 진입로가 만나는 지점에서 만나 남문이 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문헌비고」의 내용에 옹성이 네 개 있는 것으로 보아 네 개의 성문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지만 그 흔적을 찾을 수는 없다. 읍성의 재료는 고려시대에는 대부분 토성이었으나 조선 초기 석성으로 바뀌고 그 규모가 확장된다. 옥구읍성의 경우 그 형태는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조선 초기 평산성의 기본구조를 지니고 있으나 축성방법은 특이하다. 현재의 옥구읍성은 흙에 덮여 있는 상태이지만 전체적 윤곽은 잘 남아 있다. 현재의 외형으로만 보아서는 흙을 다져 가며 쌓은 판축법 양식의 토성으로 보인다. 그러나 표토층을 거두어 내면 성의 아래 부분에 자연석을 다듬은 석축이 나타난다. 즉 성의 바깥쪽만 석축을 대는 내탁법을 사용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특이한 점은 성의 윗부분은 석축을 사용하지 않고 잡석과 흙을 다져 쌓는 모습이라는 것이다. 윗부분만 보아서는 고구려의 안학궁 토성과 형태가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옥구지역은 백제 때는 마서량현이었으며 마한 때에도 사노국이 있던 역사 깊은 곳으로 옥구읍성도 문종 원년에 신축되었다고 기록에는 나오지만 읍성의 서쪽면에서 성벽 아래로 2층의 토단식 방책지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는데 다층의 토단양식은 백제지역에서만 보이는 양식으로 적어도 백제시대에 성곽이었다가 폐성이 된 후 조선시대에 그 자리에 읍성을 신축한 것으로 보인다. 옥구읍성은 대산산성과 함께 해안방어의 중심 지역으로 만경강 하구와 금강(백강)을 지키는 최전방 지휘소였으리라 보인다. 옥구읍성은 현 상태에서 약간의 지원과 노력이 있다면 평산성으로서 그 관광자원의 가치가 무한하다고 본다. 군산 시민 중 군산에 성이 있음을 아는 사람은 극히 적다. 성의 종류가 다양함을 볼 때 옥구향교와 자천대를 포함한 옥구읍성의 개발은 꿈과 같은 계획이 아닌 시와 향토 지역민의 의지에 의해 얼마든지 이룰 수 있는 일이며 서울의 몽촌토성 등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옥구읍성은 알려지지 않은 소박함과 신비함을 주는 성으로 인식되어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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