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쇠(遭衰,趙衰) 또는 조최는 그의 아들 조돈(趙盾)과 함께 춘추시대 진(晉)나라의 유명한 공신들이었다. 중이(重耳)는 진(晋)나라로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이것을 보다 못한 숙부(叔父)인 호언과 조쇠(遭衰)가 뽕나무 밑에 앉아서 제나라에서 빠져 나갈 것을 은밀히 상의를 했다. 제 환공 사후 패자의 자리가 비어있는 사이 19년 동안이나 망명생활을 했던 진문공은 호의, 조쇠 등 현신들의 도움을 받아 국력을 강하게 만들었다. 이후 주양왕이 왕실의 내란으로 정나라로 피신하자 주양왕을 도와 난을 평정하였다. 이어서 기원전 632년 송(宋)의 원조요청을 받는다. 그는 성복에서 초나라의 성왕을 꺽고 천토에서 회맹함으로써 두 번째로 패자가 되었다. 진나라 문공이 업 (刻) 땅을 공격했을 때 조쇠(趙衰)의 계책을 받아들여 크게 승리하였다. 진문공은 온, 원, 번양, 찬모 4읍의 경계에 봉해지니 직접 태행산의 남쪽에 통해 가서 남양이라고 이름하였다. 진나라 문공이 주왕으로부터 원 땅을 받고 그곳을 지키는 일이 어렵다 생각하였다. 문공(文公)은 원을 조쇠의 봉읍(封邑)으로 했다.
조쇠(遭衰,趙衰) 또는 조최는 그의 아들 조돈(趙盾)과 함께 춘추시대 진(晉)나라의 유명한 공신들이었다. 중이(重耳)는 진(晋)나라로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이것을 보다 못한 숙부(叔父)인 호언과 조쇠(遭衰)가 뽕나무 밑에 앉아서 제나라에서 빠져 나갈 것을 은밀히 상의를 했다. 제 환공 사후 패자의 자리가 비어있는 사이 19년 동안이나 망명생활을 했던 진문공은 호의, 조쇠 등 현신들의 도움을 받아 국력을 강하게 만들었다. 이후 주양왕이 왕실의 내란으로 정나라로 피신하자 주양왕을 도와 난을 평정하였다. 이어서 기원전 632년 송(宋)의 원조요청을 받는다. 그는 성복에서 초나라의 성왕을 꺽고 천토에서 회맹함으로써 두 번째로 패자가 되었다. 진나라 문공이 업 (刻) 땅을 공격했을 때 조쇠(趙衰)의 계책을 받아들여 크게 승리하였다. 진문공은 온, 원, 번양, 찬모 4읍의 경계에 봉해지니 직접 태행산의 남쪽에 통해 가서 남양이라고 이름하였다. 진나라 문공이 주왕으로부터 원 땅을 받고 그곳을 지키는 일이 어렵다 생각하였다. 문공(文公)은 원을 조쇠의 봉읍(封邑)으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