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왕(文王)은 지금으로부터 약 3100년전 중국 은(殷)나라 말기에 서쪽 지방에 있던 주(周)나라 제후(西伯)로 있었는데, 문왕이 선정(善政)을 베풀어 민심(民心)이 문왕에게 기울자, 폭군인 주왕(紂王)이 이를 두려워하여 문왕을 유리(羑里) 지방에 있는 옥(獄)에 가두었다고 한다. 문왕은 옥중생활을 하면서 은나라 이전인 하(夏)나라 우(禹)임금이 다스릴 때(약 4200여년전) 출현한 낙서(洛書)의 이치를 깨달아 복희팔괘의 배열을 달리 한 팔괘를 지었는데, 이를 문왕팔괘라고 한다. 이러한 전통적인 입장에 대해서도 복희팔괘와 마찬가지로 많은 이설(異說)이 있다.복희팔괘와 마찬가지로 문왕이 주나라때 역(易)을 체계화시킨 상징적인 인물로 보아 복희팔괘보다 뒤에 나온 팔괘를 문왕팔괘라 하고, 또한 복희선천팔괘보다 뒤에 나왔기에 후천팔괘라고 명명한 것으로 추론하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전통적으로사용되어 온 ‘문왕후천팔괘’라는 명칭 대신에 〈후천팔괘〉로 명명하고자 한다.
문왕(文王)은 지금으로부터 약 3100년전 중국 은(殷)나라 말기에 서쪽 지방에 있던 주(周)나라 제후(西伯)로 있었는데, 문왕이 선정(善政)을 베풀어 민심(民心)이 문왕에게 기울자, 폭군인 주왕(紂王)이 이를 두려워하여 문왕을 유리(羑里) 지방에 있는 옥(獄)에 가두었다고 한다. 문왕은 옥중생활을 하면서 은나라 이전인 하(夏)나라 우(禹)임금이 다스릴 때(약 4200여년전) 출현한 낙서(洛書)의 이치를 깨달아 복희팔괘의 배열을 달리 한 팔괘를 지었는데, 이를 문왕팔괘라고 한다. 이러한 전통적인 입장에 대해서도 복희팔괘와 마찬가지로 많은 이설(異說)이 있다.복희팔괘와 마찬가지로 문왕이 주나라때 역(易)을 체계화시킨 상징적인 인물로 보아 복희팔괘보다 뒤에 나온 팔괘를 문왕팔괘라 하고, 또한 복희선천팔괘보다 뒤에 나왔기에 후천팔괘라고 명명한 것으로 추론하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전통적으로사용되어 온 ‘문왕후천팔괘’라는 명칭 대신에 〈후천팔괘〉로 명명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