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려(依慮)는 왕 마여의 아들로 왕위에 오른다. 마여가 죽자 그 아들 의려는 나이 겨우 6세였다. 이 의려를 세워서 왕을 삼았다. 고구려 서천왕15년 을사년. 진서에 따르면 285년경, 부여왕 의려 때 선비의 모용외(모용귀)가 내침하고, 부여가 대패하였다. 이에 왕 의려 근심과 압박으로 자살하였다. 부여인 1만여 명이 모용외에게 포로가 되었다. 자제들은 옥저로 달아났다. 제 7세 천황으로 기록된 효령천황(孝靈天皇; 261~316)은 부여에서 온 의려왕(依慮王)이다. 285년에 일본에 도래하여 316년에 55세로 죽었다. 분류:부여의 왕
의려(依慮)는 왕 마여의 아들로 왕위에 오른다. 마여가 죽자 그 아들 의려는 나이 겨우 6세였다. 이 의려를 세워서 왕을 삼았다. 고구려 서천왕15년 을사년. 진서에 따르면 285년경, 부여왕 의려 때 선비의 모용외(모용귀)가 내침하고, 부여가 대패하였다. 이에 왕 의려 근심과 압박으로 자살하였다. 부여인 1만여 명이 모용외에게 포로가 되었다. 자제들은 옥저로 달아났다. 부여 의려·의라왕, 효령·숭신 천황이 되었다. 효령천황의 이름은 후토니(賊斗邇, 太瓊)이며 그의 수도는 구로다노이호토(黑田盧戶)궁이다. 랴오허강 서쪽 대릉하 북쪽에 살던 부여국인들이 선비족의 전연국 모용외에게 망하여 부여국 의려왕이 부여국을 아들 의라왕에게 물려주고, 의려왕 자신은 대릉하에서 배를 타고 일본으로 와서 효령 천황이 되었다. 의려왕으로부터 부여국을 이어받은 의라왕은 중국 동진의 도움으로 재건하여 다시 요하 부근에 나라를 세웠으나, 거듭되는 모용외의 침략으로 인하여 결국 수많은 백성들을 이끌고 일본으로 건너와 숭신천황이 되었다. 의라왕의 이동 행로 중에 298년 백제 책계대왕이 전사하였고, 300년에 신라와 교류를 하였다. 숭신천황은 대마도에 처음으로 임나라는 이름을 붙였다. 318년 백제의 반격으로 숭신천황은 죽고, 의라신사가 세워졌다. 제 7세 천황으로 기록된 효령천황(孝靈天皇; 261~316)은 부여에서 온 의려왕(依慮王)이다. 285년에 일본에 도래하여 316년에 55세로 죽었다. 분류:부여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