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한성(番汗城)은 변한의 수도였다. 서우여 번한성의 가운데를 지나는 물은 지금 여라하(汝羅河)라고 하는데 고대 황수이기도 했다. 기후(箕 ?)는 기원전 323년에 이전에 연나라 자객에 의하여 시해된 번한의 자리가 빈 시기를 타서 스스로 번한성을 선점하고 번조선왕이라 칭하면서 단군에게 윤허를 구하였고, 이에 단군조선 46대 보을단군이 윤허하였다. 기후(箕?)가 41세 번한이 되어 처음으로 번한성(番韓城)에 살게 되었는데 전한서에 따르면 요동군 패수(沛水)에 번한현(番汗縣)이 있었다. 기원전 323년에는 개평(안덕향) 서쪽, 영정하 동쪽의 고하(沽하) 근처에 번한성이 있었고, 이 번한성을 기후가 선점하여 번조선왕이라 칭하면서 연나라 침입에 대비한 것이다.
번한성(番汗城)은 변한의 수도였다. 서우여 번한성의 가운데를 지나는 물은 지금 여라하(汝羅河)라고 하는데 고대 황수이기도 했다. 기후(箕 ?)는 기원전 323년에 이전에 연나라 자객에 의하여 시해된 번한의 자리가 빈 시기를 타서 스스로 번한성을 선점하고 번조선왕이라 칭하면서 단군에게 윤허를 구하였고, 이에 단군조선 46대 보을단군이 윤허하였다. 기후(箕?)가 41세 번한이 되어 처음으로 번한성(番韓城)에 살게 되었는데 전한서에 따르면 요동군 패수(沛水)에 번한현(番汗縣)이 있었다. 기원전 323년에는 개평(안덕향) 서쪽, 영정하 동쪽의 고하(沽하) 근처에 번한성이 있었고, 이 번한성을 기후가 선점하여 번조선왕이라 칭하면서 연나라 침입에 대비한 것이다. 46대 번한왕 기준(箕準)은 기원전 221년에 즉위하여 서우여의 번한성에 있다가 그해 연나라 장수 진개(秦開)가 쳐들어 와서 2000리까지나 땅을 뺏았겼다. 기원전 311년경 연나라 장수 진개가 번한과 경계를 삼은 곳이 만번한이다. 이 만번한은 바로 번한성(番汗城)이 있던 곳으로서 바로 영정하와 고하 부근의 지역이 된다. 그런데 위만은 한나라 군대가 쳐들어 온다고 번한왕 기준(箕準)을 속여서 번한성에 입성하였고 번한왕을 내몰 았으며 스스로 번한 왕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