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의종(唐懿宗, 833년 - 873년)은 당나라의 제17대 황제(859 - 873)로 본명은 이최(李漼)이고 연호는 함통(咸通)이다. 시호는 소성공혜효황제(昭聖恭惠孝皇帝)이다. 당선종의 장남이었다. 당의종 중화(中和) 원년(881)에 황건봉기 의군들이 장안을 점령하여 당희종이 성도로 이사간다. 당의종 함통 원년 온정균은 다시 장안으로 돌아온다. 새 황제가 들어선 때를 틈타서 기회를 엿보기 위해서이다. 백만탑다라니경은 770년에 새긴 것으로 다라니경보다 적어도20년 이상 후의 것이고, 중국의 [금강반야바라밀경]은 서기 868년 당의종 함통 9년에 목판을 만든 것으로 다라니경보다 최소한 118년 후의 것이다. 당선종 대중연간(847-860)에 일본은 왕자를 당나라에 보내지 않았다. 다만, 당선종의 아들인 당의종(唐懿宗)이 즉위한 후인 함통3년(862)에 일본의 불문에 귀의한 친왕이 중국을 온 적이 있다.
당의종(唐懿宗, 833년 - 873년)은 당나라의 제17대 황제(859 - 873)로 본명은 이최(李漼)이고 연호는 함통(咸通)이다. 시호는 소성공혜효황제(昭聖恭惠孝皇帝)이다. 당선종의 장남이었다. 당의종 중화(中和) 원년(881)에 황건봉기 의군들이 장안을 점령하여 당희종이 성도로 이사간다. 당의종 함통 원년 온정균은 다시 장안으로 돌아온다. 새 황제가 들어선 때를 틈타서 기회를 엿보기 위해서이다. 백만탑다라니경은 770년에 새긴 것으로 다라니경보다 적어도20년 이상 후의 것이고, 중국의 [금강반야바라밀경]은 서기 868년 당의종 함통 9년에 목판을 만든 것으로 다라니경보다 최소한 118년 후의 것이다. 당선종 대중연간(847-860)에 일본은 왕자를 당나라에 보내지 않았다. 다만, 당선종의 아들인 당의종(唐懿宗)이 즉위한 후인 함통3년(862)에 일본의 불문에 귀의한 친왕이 중국을 온 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