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황성(東黃城)은 평양 부근에 있었던 고구려의 성이다. 고구려 11대 동천왕 때 관구검의 침략을 받아 환도성(국내성의 방어성)이 함락당한 뒤 247년 수도를 동황성(東黃城)으로 옮겼다. 미천왕의 아들인 고국원왕 때 연나라 모용황의 침공을 받아 환도성이 함락되자 동황성으로 도읍을 옮겼던 것이고, 또 백제에서 근초고왕과 무광왕(계왕의 아들) 사이에 왕위다툼이 일어났다. 서기 425년에 북위(北魏)와 동맹을 맺었고, 북위와 전쟁 가능성이 없어지자 수도를 북한 평양지역 동황성에서 요양으로 옮겼다. 이 요양의 평양성은 문자태왕, 안원태왕, 양원태왕, 평원태왕 때까지 사용되었다. 수도가 황폐해지자 다음해인 343년에 고국원왕은 거처를 평양 동황성으로 옮겼다. 〈삼국사기〉에는 동황성이 서경(西京), 즉 지금의 평양 동쪽 목멱산(木覓山)에 있다고 했다.
동황성(東黃城)은 평양 부근에 있었던 고구려의 성이다. 고구려 11대 동천왕 때 관구검의 침략을 받아 환도성(국내성의 방어성)이 함락당한 뒤 247년 수도를 동황성(東黃城)으로 옮겼다. 미천왕의 아들인 고국원왕 때 연나라 모용황의 침공을 받아 환도성이 함락되자 동황성으로 도읍을 옮겼던 것이고, 또 백제에서 근초고왕과 무광왕(계왕의 아들) 사이에 왕위다툼이 일어났다. 서기 425년에 북위(北魏)와 동맹을 맺었고, 북위와 전쟁 가능성이 없어지자 수도를 북한 평양지역 동황성에서 요양으로 옮겼다. 이 요양의 평양성은 문자태왕, 안원태왕, 양원태왕, 평원태왕 때까지 사용되었다. 수도가 황폐해지자 다음해인 343년에 고국원왕은 거처를 평양 동황성으로 옮겼다. 〈삼국사기〉에는 동황성이 서경(西京), 즉 지금의 평양 동쪽 목멱산(木覓山)에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