굽타 제국(힌두어: गुप्त राजवंश)은 쿠샨 제국이 멸망한 후 4세기 초에 북인도를 지배하던 제국이였다. 이 제국 치세에 십진법이 발명되었다. 쿠샨인과 샤카인, 투르크인과 같은 이민족들을 몰아내고 북인도를 통일하게 되는데, 굽타왕조에서는 민족의식이 트이기 시작했었다. 그 결과 브라만교를 바탕으로 인도의 민간신앙과 불교를 융합한 힌두교가 왕과 백성들의 지지를 받게되었다. 힌두교도들의 일상생활에 마누 법전이 영향을 끼치게 된것도 굽타 제국 시기때부터였다. 또한, 아리아인의 언어인 산스크리트어로 쓰인 '마하바라타'가 힌두교의 경전이 되었다. 굽타 제국은 여러차례에 걸쳐 훈족의 침입으로 북인도 지방의 불교 교단은 크게 타격을 입어 민간의 불교신앙은 쇠퇴하였으나, 아잔타 석굴사원과 같은 굽타 양식의 불교 미술이 발달하였다.
굽타 제국(힌두어: गुप्त राजवंश)은 쿠샨 제국이 멸망한 후 4세기 초에 북인도를 지배하던 제국이였다. 이 제국 치세에 십진법이 발명되었다. 쿠샨인과 샤카인, 투르크인과 같은 이민족들을 몰아내고 북인도를 통일하게 되는데, 굽타왕조에서는 민족의식이 트이기 시작했었다. 그 결과 브라만교를 바탕으로 인도의 민간신앙과 불교를 융합한 힌두교가 왕과 백성들의 지지를 받게되었다. 힌두교도들의 일상생활에 마누 법전이 영향을 끼치게 된것도 굽타 제국 시기때부터였다. 또한, 아리아인의 언어인 산스크리트어로 쓰인 '마하바라타'가 힌두교의 경전이 되었다. 굽타 제국은 여러차례에 걸쳐 훈족의 침입으로 북인도 지방의 불교 교단은 크게 타격을 입어 민간의 불교신앙은 쇠퇴하였으나, 아잔타 석굴사원과 같은 굽타 양식의 불교 미술이 발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