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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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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비성 [泗沘城]은 부소산성(扶蘇山城)이며 백제의 마지막 왕성으로 백제 시대에는 사비성(泗沘城)으로 불렸다. 부여군 부여읍의 서쪽에 백마강을 낀 부소산에 자리하고 있으며, 둘레는 대략 2.2km 이다. 사비는 백제의 세번째 도읍지 지금의 부여군이다. 백제 성왕 16년(538)에 국호를 남부여로 바꾸면서 웅진에서 천도한 백제의 수도이다. 현재는 대한민국 충청남도 부여군 일대 이며, 유적으로는 부소산성, 낙화암, 정림사지 석탑 등이 있다. 사비성 백제 사찰의 중심 절터 '정림사지 넓은 공터엔 오층석탑과 석불좌상만 남아 있다' 백제 사비성은 계획도시였다. 사비도성은 외각에 나성으로 둘러싸여 있다. 부소산성은 자연지형을 이용해 만든 토성으로 사비성을 방어하기 위한 시설 이었을 것이다. 김유신이 이끄는 신라군과 소정방이 거느리고 온 당군에 협격을 당한 백제는 마침내 660년 7월 13일 사비도성이 함락됐고 공주로 탈출했던 의자왕도 사비도성 함락 후 엿새만에 스스로 성문을 열었다.
  • 사비는 탁리(託利)와 같이 달아난 교시를 뒤쫓아가서 장옥택(長屋澤)에서 발견하여 잡았다. 그러나 교시의 다리 힘줄을 함부로 끊었다는 죄로 구덩이에 생매장되었다. 고구려 왕이 그 신하 탁리(託利)ㆍ사비(斯卑)를 죽였다. 교제(郊祭) 에 쓸 돼지가 도망쳐서 왕이 두 사람(탁리 사비)을 시켜 쫓아가 잡게 하였더니, 그들은 돼지를 잡아 다리의 힘줄을 끊어 버렸으므로, 왕이 노하여 “제천할 희생을 어찌 함부로 상할 것이냐”며 사비를 탁리와 함께 구덩이 속에 넣고 죽이고 말았다. 그런데 한달 후 유리명왕이 편치 못하자 무당이 말하기를 사비와 탁리가 준 병환이라고 하였다. 9월에 왕이 병들자 무당이 말하기를 “ 탁리와 사비가 병의 빌미가 된 것입니다 ”라고 했습니다. 왕이 무당을 시켜 사과하니 병이 곧 나았습니다. nu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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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비성 [泗沘城]은 부소산성(扶蘇山城)이며 백제의 마지막 왕성으로 백제 시대에는 사비성(泗沘城)으로 불렸다. 부여군 부여읍의 서쪽에 백마강을 낀 부소산에 자리하고 있으며, 둘레는 대략 2.2km 이다. 사비는 백제의 세번째 도읍지 지금의 부여군이다. 백제 성왕 16년(538)에 국호를 남부여로 바꾸면서 웅진에서 천도한 백제의 수도이다. 현재는 대한민국 충청남도 부여군 일대 이며, 유적으로는 부소산성, 낙화암, 정림사지 석탑 등이 있다. 사비성 백제 사찰의 중심 절터 '정림사지 넓은 공터엔 오층석탑과 석불좌상만 남아 있다' 백제 사비성은 계획도시였다. 사비도성은 외각에 나성으로 둘러싸여 있다. 부소산성은 자연지형을 이용해 만든 토성으로 사비성을 방어하기 위한 시설 이었을 것이다. 김유신이 이끄는 신라군과 소정방이 거느리고 온 당군에 협격을 당한 백제는 마침내 660년 7월 13일 사비도성이 함락됐고 공주로 탈출했던 의자왕도 사비도성 함락 후 엿새만에 스스로 성문을 열었다.
  • 사비는 탁리(託利)와 같이 달아난 교시를 뒤쫓아가서 장옥택(長屋澤)에서 발견하여 잡았다. 그러나 교시의 다리 힘줄을 함부로 끊었다는 죄로 구덩이에 생매장되었다. 고구려 왕이 그 신하 탁리(託利)ㆍ사비(斯卑)를 죽였다. 교제(郊祭) 에 쓸 돼지가 도망쳐서 왕이 두 사람(탁리 사비)을 시켜 쫓아가 잡게 하였더니, 그들은 돼지를 잡아 다리의 힘줄을 끊어 버렸으므로, 왕이 노하여 “제천할 희생을 어찌 함부로 상할 것이냐”며 사비를 탁리와 함께 구덩이 속에 넣고 죽이고 말았다. 그런데 한달 후 유리명왕이 편치 못하자 무당이 말하기를 사비와 탁리가 준 병환이라고 하였다. 9월에 왕이 병들자 무당이 말하기를 “ 탁리와 사비가 병의 빌미가 된 것입니다 ”라고 했습니다. 왕이 무당을 시켜 사과하니 병이 곧 나았습니다. nu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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