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류관(冕旒冠, 冕冠)은 고려 ·조선시대 왕과 왕세자의 즉위식, 결혼식 등에 입는 대례복인 면복에 쓰는 관모로 곤복(袞服)과 함께 착용하였다. 면관의 기원은 중국 고대의 관모인 작변(爵弁)이 변하여 여러 장식이 더해진 것이다. 면관이란 명칭은 원래 앞이 뒤보다 1치[寸] 정도 앞으로 굽어 기울어지다[俛]는 데서 나온 말이다. 대체로 폭이 7치, 길이 1자[尺] 2치의 전원후방(前圓後方)의 평천판(平天板)에 앞 4치, 뒤 3치의 수류(垂旒)를 달고 면관의 좌우 양옆 귀쪽에 주광(黈纊)과 옥진(玉瑱)을 늘어뜨리고 굉(紘)과 담(紞)으로 장식되어 있다. 한국의 왕은 중국의 친왕례(親王禮)에 따라 구류면(九旒冕)이었고, 왕세자는 팔류면(八旒冕)이었으나 광무 원년(1897년) 고종이 황제에 즉위하고 십이류면(十二旒冕)이 되었고 황태자관은 구류면이 되었다. null
면류관(冕旒冠, 冕冠)은 고려 ·조선시대 왕과 왕세자의 즉위식, 결혼식 등에 입는 대례복인 면복에 쓰는 관모로 곤복(袞服)과 함께 착용하였다. 면관의 기원은 중국 고대의 관모인 작변(爵弁)이 변하여 여러 장식이 더해진 것이다. 면관이란 명칭은 원래 앞이 뒤보다 1치[寸] 정도 앞으로 굽어 기울어지다[俛]는 데서 나온 말이다. 대체로 폭이 7치, 길이 1자[尺] 2치의 전원후방(前圓後方)의 평천판(平天板)에 앞 4치, 뒤 3치의 수류(垂旒)를 달고 면관의 좌우 양옆 귀쪽에 주광(黈纊)과 옥진(玉瑱)을 늘어뜨리고 굉(紘)과 담(紞)으로 장식되어 있다. 한국의 왕은 중국의 친왕례(親王禮)에 따라 구류면(九旒冕)이었고, 왕세자는 팔류면(八旒冕)이었으나 광무 원년(1897년) 고종이 황제에 즉위하고 십이류면(十二旒冕)이 되었고 황태자관은 구류면이 되었다. nul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