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조의 생년은 알려져 있지 않으나 그가 사망한 해는 기원후 28년으로 전해지고 있다. 백제의 건국시조이며, 엄밀한 의미에서는 위례성(慰禮城)에 토대를 둔 백제 왕실의 시조이다. 전해져 내려오는 신화에 의하면 소서노가 주몽과 결혼하기 전에 우태와 결혼해서 비류와 온조를 낳았다. 동명19년(B.C.19) 두절(斗切)태자를 온조(溫祚)태자로 하고 환나패자로 삼았다. 왕이 명으로 두절태자를 유리(類利)태자의 이름으로 삼도록 하였다. 그리고 주몽이 고구려를 건국한 후 예씨부인과 사이에서 낳은 유리왕이 사직을 물려받게 되었다. 유리가 돌아온 후 비류와 온조는 고구려를 떠난다. 비류는 바닷가에서 살고 싶어서 온조와 헤어지고 비추홀로 가는데, 온조는 비추홀이 땅이 나빠서 하남 위례성에십제로 옮겨서 거기서 나라를 세운다.
온조의 생년은 알려져 있지 않으나 그가 사망한 해는 기원후 28년으로 전해지고 있다. 백제의 건국시조이며, 엄밀한 의미에서는 위례성(慰禮城)에 토대를 둔 백제 왕실의 시조이다. 전해져 내려오는 신화에 의하면 소서노가 주몽과 결혼하기 전에 우태와 결혼해서 비류와 온조를 낳았다. 동명19년(B.C.19) 두절(斗切)태자를 온조(溫祚)태자로 하고 환나패자로 삼았다. 왕이 명으로 두절태자를 유리(類利)태자의 이름으로 삼도록 하였다. 그리고 주몽이 고구려를 건국한 후 예씨부인과 사이에서 낳은 유리왕이 사직을 물려받게 되었다. 유리가 돌아온 후 비류와 온조는 고구려를 떠난다. 비류는 바닷가에서 살고 싶어서 온조와 헤어지고 비추홀로 가는데, 온조는 비추홀이 땅이 나빠서 하남 위례성에십제로 옮겨서 거기서 나라를 세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