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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북평군(右北平)은 전국 시대 연5군에 속하는 곳이다. 고구려 5대 모본왕 2년(A.D.49) 조에 봄에 장수를 보내 한나라의 북평(중국 사서들은 우북평이라 했다), 어양, 상곡, 태원 등지를 습격했더니 요동 태수 채용이 은의로 대하므로 다시 화친을 했다. 고구려는 서기 49년에 점령한 상곡, 어양, 우북평 등지를 서기 58년경에 모두 상실하였고, 이때부터 고구려는 후한, 부여, 선비에 포위되어 고립되었다. 요서에 침입하여 태수를 죽이고 한안국을 패주시켰다. 한 장군은 그 책임을 지고 우북평으로 좌천되었다. 그리하여 경제는 이광을 소환하여 우북평 태수로 임명했다. 그때 한안국(韓安國)도 여러 차례 싸웠지만 승리하지 못하자 무제는 다시 이광을 불러 우북평(右北平, 요령성 능원서남)의 태수를 맡겼다. 영평부는 바로 옛적의 우북평으로, 이광이 일찍이 북평 태수(北平太守)로 있을 적에 이 돌을 쏘았다는 것이다. 무경총요는 송나라때 제작된것이다. 갈석산은 지리지에 갈석산은 우북평 려성현 서남에 있다. 한무제가 올라 바다를 바라보았다. 본래 고구려의 골내근현(骨乃斤縣)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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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 - 우북평군(右北平)은 전국 시대 연5군에 속하는 곳이다. 고구려 5대 모본왕 2년(A.D.49) 조에 봄에 장수를 보내 한나라의 북평(중국 사서들은 우북평이라 했다), 어양, 상곡, 태원 등지를 습격했더니 요동 태수 채용이 은의로 대하므로 다시 화친을 했다. 고구려는 서기 49년에 점령한 상곡, 어양, 우북평 등지를 서기 58년경에 모두 상실하였고, 이때부터 고구려는 후한, 부여, 선비에 포위되어 고립되었다. 요서에 침입하여 태수를 죽이고 한안국을 패주시켰다. 한 장군은 그 책임을 지고 우북평으로 좌천되었다. 그리하여 경제는 이광을 소환하여 우북평 태수로 임명했다. 그때 한안국(韓安國)도 여러 차례 싸웠지만 승리하지 못하자 무제는 다시 이광을 불러 우북평(右北平, 요령성 능원서남)의 태수를 맡겼다. 영평부는 바로 옛적의 우북평으로, 이광이 일찍이 북평 태수(北平太守)로 있을 적에 이 돌을 쏘았다는 것이다. 무경총요는 송나라때 제작된것이다. 갈석산은 지리지에 갈석산은 우북평 려성현 서남에 있다. 한무제가 올라 바다를 바라보았다. 본래 고구려의 골내근현(骨乃斤縣)이다. 북평이 계현 부근을 가리키면 우는 동쪽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남쪽을 가리킨다. 백제가 강좌에 거했다고 하면 양자강 북쪽이라고 보아야 한다. 요사 석성현은 한나라가 설치하고 우북평군에 속한다. 당나라 정관중에 임유현을 설치했다. 분류:서안 분류:연5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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